해파랑길 27코스는 죽변항을 시작으로 드라마 " 폭풍속으로" 촬영지가 있는 용의 꿈길을 지나 울진원자력 발전소와 덕구온천 길목의 부구리까지 이어지는 11.4km의 짧은 코스이다.
그러나 그 길에는 죽변등대 아래로 펼쳐지는 파도의 폭풍같은 외침이 들려오고, 초록의 청보리밭을 지날때면 지난 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디어 기어코 이삭을 매달고 마는 인고의 결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때로, 산간 오지속의 작은 마을을 지나기도 하고, 혼자 걸어가는 시간동안 침묵을 배우기도 한다.
혼자 걸으면 상념에 젖어 방향을 잃을 때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도, 눈을 놀라게 하는 풍경을 마주하면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때도 있다 .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혼자 걸어온 길이다.
남은 길도 혼자일 것이다. 침묵은 혼자일 때 그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해파랑길 그 길에 다시 서있다
길위에서 청보리밭은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죽변리 언덕은 온통 보리밭이다.
시야가 탁트인 곳이 아님에도 보리밭에 서면 마음이 탁트이는 느낌을 준다.
해파랑길 여행은 풍경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사는 세상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죽변항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은 가자미 건조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따스한 시선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다.
죽변항을 돌아서니 몸을 가눌 수 없을 초속 16m의 강한 바람과 파도가 해안을 덮치고 있다
우뢰와 같은 큰 소리에 깜짝 놀라 한발자욱 뒤로 물러난다.
내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오는 자연현상에 오늘도 힘든 여정이 될 것 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 22일차.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히면서 부서진 물방울이 바람에 실려 온몸을 덮친다
이때는 도망치는게 가장 좋은 방법..재빠르게 언덕을 올라서서 바람을 피한다
대숲으로 이끌었던 거친 바람은 언덕배기에서 웅장한 죽변항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포효하고 있다.
불과 몇m 떨어지지 않은 바다가 용틀임하고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대나무숲으로 급하게 몸을 숨긴다
용이 놀면서 승천한 곳이란 의미로 용추곶이라고 불렀다는 "용의 길"
지나온 바다가 어쩐지 상스럽게 용틀임하고 바닷속을 헤집더라니...자연을 탓할 일이 아니고 용을 탓할 일이구나..
SBS에서 2004년에 방영한 드라마 "폭풍속으로"는 고래잡이 하던 아버지밑에서 자란 두아들과 한여자와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하였다고 한다.
드라마가 진행되었던 현장은 과연 "폭풍속으로" 를 실감나게 하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다를 건너온 사나운 바람은 몸조차 가누기 힘들게 만들고 해변에는 거품같은 하얀파도가 거세게 몰아친다
빨간 지붕은 "폭풍속으로" 드라마세트장이다.
해변가 산아래 설치된 스카이레일이 위태롭게 보이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핫플레이스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죽변바다를 벗어나 주택가를 따라 길을 잡는다. 이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온다.
그 바람을 안고 언덕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가다 보면 산속이라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은 청보리밭을 만난다
초록의 아름다움이다. 가공의 색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경관 아닌가. 한참을 초록에 빠져 바라 보았다
폭풍같은 바람탓인지 넓은 활주로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없다.
바다도 보이지 않고 오직 초록의 보리밭만 있는 ..바람 막아주는 그 어느것도 없는 길을 그 누구도 말을 붙일 것 같지 않은 길을 걷고 또 걸어간다
작은 산간 마을로 내려서니 어느새 바람이 멎고 눈이 부실것 같은 햇살이 찬란하게 빛난다
유년의 시간을 보낸 내 고향도 산간 마을이었다. 흙집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강물을 여과없이 그냥 마시던 곳이었다
수십년의 시간을 딪고 나는 지금 내 유년의 고향같은 마을을 지나고 있다
바다를 떠나면, 바람도 떠나는가 보다. 조용하다. 평화롭다.
작은 밭뙤기조차 귀하디 귀한 곳이 산간마을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산간마을은 단절된 시골의 의미가 더이상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농가앞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었고 집집마다 자동차 없는 집이 없으니 산간마을과 도시의 간극은 이미 퇴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우리네 유년의 모습과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갖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해파랑길위의 원자력 발전소는 모두 3곳..고리, 월성, 그리고 울진 부구리..
상식의 수준에서 판단한 결과가 때로는 전문가의 수준에서 판단한 결과보다 나을때도 있지 않을까.
탈원전과 원전 재가동 관련 정책은 국민이 원하고 희망하는 상식적 수준에서 판단하고 결정되었으면 .......
최근 울진산불로 큰 위험을 초래할 뻔했던 원자력 발전소는 119 소방대원과 진화대의 헌신으로 위험 저지선을 간신히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울진 부구리에서 27코스는 끝이난다. 도착시각 13시.
울진군에 속한 4개코스를 모두 걸었다, 이제 길은 28코스 강원 삼척으로 넘어간다.
길이 그리워 시작한 여정이 지난 7일간의 일정으로 25일차까지 소화하였다.
길이 멀어질 수록 지나온 길에 대한 아쉬움을 더해가지만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남은 길 220 km.
바닷길 따라 해파랑길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으니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자.
★ 해파랑길 27코스 정보
- 식수가 없으므로 죽변항 또는 봉평해변에서 미리 준비
- 울진 부구리 종점 부근 식당에서 점심 해결 가능하며 걷는 사람 역량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삼척 호산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완주 가능할 것으로 보여지나 다분히 주관적 의견임
- 부구리는 주차할 공간 없으며 삼척 호산 시외버스 정류장 주차공간과 화장실 완비
- 최근 울진 산불로 인하여 코스에 포함된 나곡과 삼척 월천리는 산불 피해가 크다고 하니 사전에 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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