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5코스는 기성면 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사동항을 지나 망양정옛터, 촛대바위를 거쳐 울진 왕피천 수산교까지 이어지는 23km의 쪽빛 바다를 품은 해안도로를 걷는 구간이다. 오늘 20일차
한구비 넘어가면 새로운 모래해변이 또 한구비 너머에 또다른 모래해변이 나타나며 보는 이의 넋을 놓게 한다.
바람이 쓸고 간 모래해변에는 아름다운 물결무늬가 선명하다.
부드러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
그 모래길을 맨발로 걸어갈 수 있는 자유..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이 길에 있다.
오랜 시간 걸음으로 딱딱해진 발을 부드럽게 감싸는 모래, 그 해변으로 밀려드는 작은 파도가 발등을 스쳐 지나가기라도 하면 정신은 맑아지고 몸속 찌꺼기가 흘리는 땀과 함께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양말을 벗고 천천히..발등을 간질이는 부드러움을,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만끽하시길 바라며...
해파랑길 25코스를 시작한다.
농로를 벗어나 다시 아스팔트 길로 접어든다.
엊저녁 내내 비바람 불고 기온까지 내려가 차박을 하느라 애를 먹은 탓인지 피로감이 낮까지 이어진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분에 24코스를 돌아 이제 25코스로 접어 들었다.
풍경이 달라지면 분위기도 달라진다.
기성정류장을 벗어나 언덕하나를 넘어서니 강한 바람과 날리는 모래가 길걷기를 방해한다.
방향조차 없는 바람이 정신까지 혼미하게 하지만 사람은 먹어야 살고 여행도 하지
낚시꾼들이 진을 치고 있는 기성항 방파제에 바람 영향을 조금 덜 받는 바위에 기대어 늦은 점심을 먹는다
기성을 벗어나 사등항을 지나 다시 언덕배기를 오른다.
아무도 없는 길위에 서서 혼자 낄낄거리기도 하며 기성망양을 향해 걸음을 옮겨간다
꽤 이름있는 해변이지만 오늘만큼은 낚시꾼을 제외하고 내가 주인이다.
맑고 깨끗한 바람이 불어간다.
모래해변엔 온갖 이야기를 품은 시간들이 흘러간다.
몸이라도 더웠다면 저 바다에 풍덩빠지고 싶은 유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비수기, 성수기라는 구분도 부족했는지 극성수기, 준성수기라는 희한한 용어까지 탄생시켜 바가지로 사람들을 농락하고 있다
극(極)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더니 " 어떤 정도가 더할 수 없을 만큼 막다른 지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럼 극성수기는 " 수요의 정도가 더할 수 없을 만큼 막다른 지경"에 이르른 상태로 해석해도 될까
사람 그림자 조차 없고 들려오는 건 오직 파도소리 뿐
기성망양해변에 작별인사를 하고 나혼자 터벅 터벅 해변길을 걷고 있다.
울진이 가까워질 수록 펼쳐지는 풍경에 가슴이 확 트인다. 작은 모래 언덕에 서서 깊은 호흡으로 동해바다를 마신다
망양정 옛터에 송림이 무성하다. 옛터에 올라서면 발아래 동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무겁던 다리가 가벼워지고 마음이 밝아 온다
굴곡진 해변 풍경과 바람소리, 파도소리, 모래결이 흐르는 소리, 바다가 숨을 쉬는 소리
망양정 바다.......
역동적인 모습의 바위들. 어느 화가인들 바다의 감정을 제대로 실어 표현할 수 있을까.
후닥닥 사진만 찍고 떠나버리기에는 풍경이 너무 아깝다
그림속에서나 나올 법한 범상치 않은 바위들이 해안에 지천으로 놓여져 있다.
만약 놓친다면 다시는 같은 풍경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서두르다 놓치지 말고 풍경속으로 한번더 걸어 들어가보자
끝없는 망망대해 눈이 시릴만큼 정말 예쁘지 않은가
풍경에도 급수가 있을까. 꾸불꾸불 해안선, 새파랗게 살아가는 사람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물에 젖은 해변
억겹의 세월이 담겨있는 바위들..누가 가장 급수가 높을까
낚시꾼은 고기를 잡는게 아니고 기다림을 낚는다고 하지 않는가.
긴 시간의 기다림이 마침내 감성돔 대어를 낚아낸다. 낚아본 사람만 아는 짜릿한 느낌...
망양휴게소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오늘 하루종일 내곁을 스쳐 지나간 사람 모두 몇명이나 될까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다. 하루종일 길을 지나왔고 지금도 길을 간다
망양휴게소를 내려서면 오산항 진입하는 오덕교를 지나면서 오늘의 여정을 마감한다.
구산해변으로 이동하여 차박하고 내일 아침 다시 오산항에서 출발 예정
잠시 짬을 내어 학꽁치 몇마리를 단숨에 낚아낸다.
요리할 자신이 없어 차박하는 부부에게 드렸더니 회한접시를 순식간에 만들어 내며 소주한병 꺼내 들고 합석한다
해파랑길과 학꽁치 안주삼아 밤이 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는 바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지난밤 밤새도록 비바람이 심술을 부렸는지 해안이 온통 쓰레기로 덮였다
회색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다. 아침까지 비가 내렸지만 망설임없이 길을 나선다.
오산항까지 이동후 다시 길을 걷는다
해파랑길 25코스를 걷는다고 했으니 멈출 수는 없다.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도 비는 내린다. 잠시 바람이 잦아든 틈을 이용하여..옷을 정비하고 다시 출발한다.
가는 길에 비가 내리면 우의를 쓰고 그치면 벗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날씨는 아무생각없이 두리번거리며 걷는 것이 더 좋다. 그러면 생각이 바뀐다. 떠나지 않았으면 어쩔뻔했는가라고
이런 생각은 걸어본 사람만 터득할 수 있는 것
무릉교를 건너는데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햇살이 비추더니 금새 검은 구름이 뒤따라 오고 콩알만한 크기의 우박이 떨어지더니 다시 비가 내린다. 누가 시샘을 하는가.
수평선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바다에는 새털같은 물결이 일어난다.
울진의 바다는 바위가 주인이다. 단순한 바위를 넘어 억만년 세월이 빚어낸 작품이니 그럴만도 하다
진복리 바다에 비가 내린다.
진복항이 눈앞에 있는데 진복버스정류장 앞 진복2리 안내판에 빗물이 들이 친다.
비내리는 바닷가.
마치 세상을 벗어나 딴세상으로 들어온듯 하다.
기왕에 내리는 비 정류장 벤치에 앉아 커피한잔으로 비내리는 세상을 마신다
방향없이 마구 불어가는 바람과 변화무쌍한 날씨,,마음 설레게 하는 풍경이 없었더라면 걷기 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풍경이 쉴틈없이 스쳐지나간다. 풍경, 풍광, 경관, 절경 어떤 표현도 부족하지 않다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조차 다른 사람들이 한 울타리속에서 살아간다.
바위도 다르지 않다.
서로 부대끼며 어떤 이는 물개를 어떤이는 악어를 닮은 바위들이 서로 한 몸처럼 이웃하여 살고 있다
울진해안도로 개설공사 중 주민의 요청에 따라 계획을 변경하고 현재의 모습을 보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위 꼭대기 소나무가 마치 촛불같아 자연스럽게 촛대바위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오직 촛대바위만을 보기 위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좋은 길 걸어가면서 딴 생각하기 없지만 촛대바위보다는 미사일바위가 더 다가오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길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조금더 초연하게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겠다
산포리 바다로 접어든다.
어느새 바람이 잦아들고 비가 그치더니 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낸다.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 아니겠는가
어수선하지 않게 조용히 물러간 날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산포리 해변에 정자가 있어 가까이 갔더니 온통 쓰레기 천지..신이 버리면 예술이 되고 인간이 버리면 쓰레기가 된다
아무렇게 놓여진듯 보이나 바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으니 오직 조물주만이 할 수있는 배치이다
보라.언밸런스 속의 밴런스..인간은 그 위에 정자하나만 놓았을 뿐
따스한 햇살이 비추이는 곳으로 점심해결하러 들어왔다. 사방에 막힌 바위 덕에 바람한점 없다. 이곳에 앉아 모닝빵과 커피한잔, 미숫가루로 점심을 대신한다.
수평선위로 넘어가는 검은 구름을 보고 있자니 문득 "도화지위에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생각이 미친다
상상만으로 온전히 느낄 수 없는 풍경이 시간을 따라 흘러간다.
조용히 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본다. 시작은 힘들었으나 마지막은 희망이다.
이렇게 바다를 벗어난다
해파랑길 25코스 종점이자 26코스 시작점인 안내도와 인증대. 그 너머로 울진 엑스포 공원이 보인다 (25코스 시.종점은 주차공간 없음)
오늘 21일차. 아침부터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더니 오후들어 바람은 그쳤지만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걷는 내내 비가 오더니, 이내 우박이 쏱아지고, 햇살이 비추더니 다시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어가는 시간이 이어진다.
굴곡없는 삶은 없다고 했다. 오늘도 어제에 이은 다음날이고 햇살비치는 날이 있으면 바람불고 비오는 날도 있게 마련...
길은 이제 수산교와 은어다리를 건너 죽변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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