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사람 이청준은 대한민국 순수소설의 거장이다. 흔히 그의 소설을 관념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실제로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기 보다는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탐색하고 있는 소설이 많다. 퇴원으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병신과 머저리, 남도사람, 당신들의 천국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중 몇편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와 이창동감독의 밀양(원작 벌레이야기)이 대표적이다.
2008년 68세에 생을 마쳤으며 그의 유해는 그가 평생을 사랑한 장흥땅 진목인근 이청준 문학자리에 묻혔다
남파랑길 80코스는 장흥 회진면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하여 천년학 영화 세트장과 선학동에 이어 강진군 마량항까지 이어지는 20km의 제법 먼 길이다. 소요시간 6시간
이청준, 한승원 문학길을 따라 걷는 구간으로 진목마을의 이청준 생가를 돌아볼 수 있으며 작품의 배경이 되는 주요 장소를 둘러 볼 수도 있다
코스는 이청준. 한승원의소설길로 시작한다. 장흥은 이청준. 한승원이라는 걸출한 소설가를 배출한 고장답게 오늘 걸어가는 길 전부가 이청준 소설의 배경이 되고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땅의 이야기가 된다
나무데크길을 따라 약간 경사진 계단을 따라가면 이내 회령진성이다.
성루에 서서 회진의 추수끝난 들판을 내려다 본다
늦가을 갈색의 들판과 푸른 하늘, 쪽빛 물색이 서로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으로 재탄생하였다
회령진성에 서면 서로 경쟁하듯 제자리에 빼곡히 들어선 회진의 집들이 전부 내려다 보인다.
회령진성을 내려와 회진초등학교를 지나고 사구마을을 지나 해변길로 내려선다. 멀리 회진대교가 보인다
꼬불꼬불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갯벌에는 S자 갯골이 물굽이를 이루며 바다로 흘러든다
가을빛에 쓰러진 풀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득량만 옥빛 바다가 물결따라 갯벌로 올라선다
유채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갯가 붉은 양철 지붕 주막이 천년학의 남여 주인공이 마지막 만남을 가진 곳이다.
영화와는 달리 소설속 인물은 " 사내,손, 주인, 여자" 등으로 이름지으며 소설을 이끌어가 가고 있다
오직 소리하나에 신명을 바치며 떠돌이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 앞 못보는 딸, 그들을 버리고 떠났으나 계속 누이를 찾아 헤메는 오라비..오랜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임권택 감독이 100번째로 내놓은 영화 "천년학"을 촬영한 세트장이다
삶의 한을 소리라는 예술의 세계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청준 소설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작품으로 알려졌다. 영화 "천년학"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남도사람들의 한서린 삶과 정서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천년학 세트장을 지난 길은 천년학 리조트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선학동 마을 안내도앞에 서서 이청준이 그렸던 날아 오르는 학의 날개짓이 살아 있는 선학동 마을의 유래를 살펴본다.
날개짓하는 학의 입상이 세워진 곳에서 이청준 문학탐방길이 시작된다. 길은 관음봉을 향해 선학동마을을 내려다 보며 오르막길로 이어지며 탐방로를 따라 이청준의 소설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장흥땅 진목사람으로 살았지만 남도땅 남도사람의 정신을 우리에게 소설로 남겼다
그의 소설속 이야기는 여기서 글로 다 말할 수는 없다.
그의 소설 축제와 눈길과 당신들의 천국과 병신과 머저리를 밤을 세워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옛일이다
날개짓하며 날아오르는 학의 모습으로 나타난 관음봉은 소설속 표현 그대로 예사롭지 않다
관음봉을 멀리서 보면 진짜 학이 날개짓하며 날아오르는 형국이다
관음봉의 형상을 주제로 하여 "선학동 나그네"라는 명작이 탄생되었다
"눈길"과 "당신들의 천국"은 그에게 푹 빠져들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남도의 끝자락 진목마을 언덕배기, 눈내리던 새벽녁 아들과 어머니의 가슴아픈 이별, 가난한 살림으로 뿔뿔히 흩어진 가족, 어서 가라고 손짓하던 어머니, 집으로 왔다 되돌아가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눈길을 읽고 잠못자는 밤을 보냈던 그때가 생각난다.
소록도 나환촌의 역사를 , 오마도 간척사업과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실화소설..당신들의 천국은 또 어떤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감동의 시간이 떠 오른다.
마을을 감싸고 흘러내린 관음봉 중턱 정자에 앉아 득량바다와 황금들판을 내려다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산이 높지 않아도 한번에 넘어서지는 못한다.
후박나무가 하늘을 가린 흙길을 지나, 득량바다를 보기도 하고 선학동마을을 눈속에 담으며 천천히 관음봉을 넘어 진목마을로 들어선다
장흥땅 진목마을은 이청준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마을회관앞 하늘을 가릴만큼 큰 느티나무를 지나 생가로 접어드는 골목을 따라 걷는데 어느집에선가 할머니의 음성이 들려온다. 키낮은 함석지붕 창가에 앉은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시선을 따라 마당으로 들어섰더니 " 요기 들어와 좀 쉬고 가라"고 하신다
오늘 아침 "아그"들이 가고 난 후 맴이 짠해서 길가던 나를 물이라도 한사발 들고가라고 불러세운 것이다
물한방울 남김없이 비우고 마당을 나서는데 "어이..조심해 가소잉... 밥 잘먹고 댕기고" 소설 "눈길"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금새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가 그랬다. 장흥에 오면 가장먼저 보고 싶은 것의 하나가 진목마을 이청준의 생가였고 그의 생애였다
할말이 왜 없으랴만 내 글로는 부족하여 다만 눈으로만 보고 사진으로만 남겨둔다
이청준묘소와 이청준문학자리가 자리한 이곳은 회진면 진목리 갯나들로 선생이 타계하시기 2년전에 자리를 미리 잡았던 곳이다. 평소에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셨다
"자네들 내가 간 뒤라도 혹시 다른 자리 알아보지 말고, 내가 살던 집 옆, 저어기 바다가 멀리 바라보이는 이 자리를 영원이 묵을 곳으로 잡아주게나. 사람들이 먹고 살라고 애 쓰는디, 나때문에 폐가 될까 두렵네"(이청준 문학자리에서 인용)
이청준 글기둥은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기 위하여 선생의 묘소앞에 세워졌다.
글기둥에는 해변아리랑의 한구절이 새겨져 있다
"그는 늘 해변 밭 언덕 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 노래가 다했을 때 그와 그의 노래는 바다로 떠나갔다. 바다로 간 그의 노래는 반짝이는 물비늘이 되고 먼 돛배의 꿈이 되어 섬들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로 살아갔다"
그가 태어나고 유년을 보냈던 장흥 진목리 갯나들에 그는 묻혔다.
앞자리는 선생과 그의 부인이 묻혔으며 뒤쪽 봉분은 선생의 부모님 합장묘이다
진목마을을 내려서서 진목저수지를 지나고 황금빛 들판이 춤추고 있는 농로로 접어들다 되돌아서서 지나온 진목마을을 바라보는데 햇살이 온몸을 감싼다.
파쇄석 자갈깔린 덕촌방조제를 끝도 없이 걸어간다. 밟히는 자갈탓에 걸어가는 길이 힘들고 멀다.
덕촌포구 부근에서 비로소 끝이나는 방조제길 너머로 한뼘의 땅이라도 놀려 둘수 없었는지 고개숙인 황금빛 벼들이 들판에 빼곡하다.
장흥의 마지막 구간에서 신리마을을 지나고 서신마을을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농로길..상흥천 다리를 건너 민기농장방향으로 길이 이어지지만 자칫하면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계속 직진하게 된다. 두루누비 앱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이니 두루누비 또는 코리아둘레길 앱을 보면서 걸어갈 일...
민기농장 한우 한마리가 호기심어린 눈짓으로 길가는 이를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바라본다. 무표정한 눈길이 애달프다
길은 어느새 장흥땅에서 강진군으로 넘어왔다.
오성금마을을 지나 신마항에서 고금대교를 바라보며 곡선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따라 걷는다.
신마항은 최근 강진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강진항 언덕위로 난 고금대교를 따라가면 해남으로 돌아가지 않고 완도읍으로 곧바로 들어갈 수 있다.
강진항과 신마마을 지나 굽이진 차도를 따라 오르면 인간극장에 출연한 북한사람 은영씨의 꽃피는 바다 전복집 입구를 지나게 된다. 언덕을 넘어서면 길은 곧장 마량항으로 이어진다
마량은 "말을 건네주는 다리"라는 뜻으로 제주도를 오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약 1km 에 걸쳐 있는 마량항은 고금대교를 건너 고금도와 완도읍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는 길목이자 까막섬이라는 천연기념물을 동시에 볼 수있는 미항(美港)이다
또한 매년 4월 마지막토요일 부터 10월 마지막 토요일까지 놀토 수산시장과 토요음악회가 열리기도 하는 이색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장흥군 회진읍에서 시작한 남파랑길 80코스는 강진군 마량항에서 끝이 난다.
- 해변아리랑에서 -
그는 늘 해변 밭 언덕 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 노래가 다했을 때 그와 그의 노래는 바다로 떠나갔다. 바다로 간 그의 노래는 반짝이는 물비늘이 되고 먼 돛배의 꿈이 되어 섬들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로 살아갔다
전설처럼 살다간 이청준의 길을 뒤로 한채 10일간의 남파랑길 2차원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간다.
오늘 63일차 2022.10.28
'코리아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파랑길 82코스(가우도~강진 舊(구)목리교) 남도여행 1번지 (2) | 2023.04.24 |
---|---|
남파랑길 81코스(마량향~강진 가우도 청자다리)그 섬에 가고 싶다 (2) | 2023.04.20 |
남파랑길 79코스(원등마을~장흥 회진시외버스터미널) 되돌아 보는 길 (3) | 2023.04.14 |
남파랑길 78코스(율포솔밭해변~장흥 원등마을회관)여행이란 무엇인가 (0) | 2023.04.07 |
남파랑길 77코스(비봉 선소항 입구~보성 율포 솔밭해변)두근 두근 가을소풍 (0) | 2023.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