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말도 있다. 평생 철들지 못한 사람을 일컷는 말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철이 들면 내가 피곤해지고, 철이 들지 않으면 남이 피곤해진다" 사리를 분변하는 판단능력이 없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면 여행과 철든다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행은 때로 즉흥적이고, 현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이며,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철이 없으면 비교적 손쉽게 결정하고 남의 눈치보지 않고 떠날 수 있으니 관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 복잡한 일상을 세상에 던져놓고 당장 떠나 보는건 어떨까
남파랑길 81코스는 강진 마량항에서 가우도 입구까지 이어지는 강진의 바다둘레길이다.
특히, 강진군의 랜드마크로 새로이 부상한 가우도는 강진군 유일의 유인도로 섬 양쪽에서 육지와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해안풍경을 돌아볼 수 있는 천혜의 바닷길로 전혀 손색이 없다
2022.11.2. 4일간의 휴식 후 다시 남파랑길을 시작한다. 오전 6시 30분 부산출발, 마량포구 10:30 도착
바람한점 없는 날, 마량바다 물결이 해안가로 조용히 밀려든다. 밀물시간이다.
보석빛 노을에 물든 마량포구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이 크지만 이제 마량포구 바다를 떠나야 한다
마량포구 너른 갯벌을 뒤로 한채 마량마을을 지나고 길게 뻗은 시멘트 도로를 지나간다.
마량우체국을 지나고 마량초등학교를 지나 마량포구를 벗어난다
큰까막섬과 작은 까막섬을 뒤로하고 언덕을 오른다. 마량포구 까막섬은 거대한 상록수림으로 뒤덮여 있으며 남해 물건리의 어부림과 함께 까막섬 어부림 또한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 어부림중 하나이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마량포구로부터 10여분, 걷는 중간 중간 뒤를 돌아보면 때론 푸른하늘도 되었다가 때론 푸른 바다가 되기도 하는 마량바다가 한참을 따라온다. 어떤 곳에 서 있어도 모두 포토존이 된다
물이 빠지면 기암괴석이 되었다 물이 차면 작은 갯바위가 되는 해변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
늦가을 해가 머리위로 지나간다. 흘린 땀이 벌써 식었는지 가볍게 불어가는 바람에도 소름이 돋는다
서중어촌체험마을을 지나고 수인마을 포구를 가로지르면 길은 곧장 내호마을로 이어진다. 그 앞은 내호도
바람탓인지 사람탓인지 내호섬은 헐벗고 빈약한 느낌이다.
바람이 머무르지 않았는지 갯벌너머 바다는 물결하나 없이 고요하다
숱한 세월과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간 갯벌을 바라보며 남호마을 가는 작은 언덕을 넘어선다
꼬불꼬불 이어진 임도를 따라 남호마을로 접어든다.
나무 등걸에 푸른 이끼가 살고있을 정도로 오래된 아름드리 보호수가 마을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이 나이 되도록 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나무를 보호하고 모셨을 것이다.
바닷가 어촌에는 고기잡이 갔다 돌아 오지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정서가 남아 있다.
그것은 거친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숙명처럼 따라 다녔던 그리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오감을 찾아 떠나는 바다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이미 남호선창을 지났으니 여기는 구곡 해변길이다.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길을 따라 풍경이 지나간다. 아마 바다 건너는 강진땅 가우도와 만덕산일 것이다
마을 갯벌 체험장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 비웠던 갯벌을 빠르게 채워간다. 조금씩 깊어지며 너른 바다가 된다.
이런 길을 걷다보면 바다속으로 빠지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백사마을 바다 건너 강진 주작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모습을 닮아 주작산이라고 했다는데 능선따라 암릉이 이어지는 형상이 마치 작은 설악산을 연상하게 한다
바다 건너 강진땅 가우도를 바라보며 백사어촌 체험마을로 접어든다.
하루에 두번, 갯벌은 바다를 비우고 다시 채운다. 비어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갯벌 체험을 한다.
봄에는 낙지, 여름에는 짱뚱어 가을에는 바지락..철따라 생명을 키우고 아낌없이 내어준다
표정없는 얼굴로 무심히 쳐다보는 소의 눈동자가 애처롭다.
이상국 시인은 그의 시 "축우지변"에서 이렇게 말한다
힘이 든다..소를 몰고 밭을 갈기란.................
소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면 내가 몰고 너희가 끌리라..
주술같은 저주라고 신경림 작가는 말했다.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경외감을 읽는다고도 했다.
윤회사상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소가 되고 소가 사람이 되는...
남파랑길에서 청자박물관은 멀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길이 바뀌어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길은 청자박물관으로 향하지 않고 가우도로 길을 잡는다
고바우전망대에 서서 먼 바다를 바라보면 가우도 출렁다리가 그림처럼 걸려 있고 멀리 해남땅과 완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그러나 고바우 전망대는 현재 공사중..인부들의 발길을 받아낸 공원은 온통 위험물 투성이다.
길은 공원안쪽으로 향하지 않고 차도를 따라 둥글게 걸음을 옮겨간다
고바우 하면 떠오르는 고바우영감의 김성환 화백이 가장 먼저 연상되지만 인근의 바위 이름 "괴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같지만 옛일을 떠올려 확인할 일은 아닌 듯..
S자로 휘어진 하저생태체험장 바다 너머로 가우도가 보인다.
마치 갓을 엎어 놓은 듯한 형상이 소를 닮았다는 표현과는 사뭇 다르다.
바람에 밀려 바닷물이 조금씩 해안으로 밀려들고 있는 오후 시간, 오늘 걸어간 이 길을 영원히 마음에 담아 둘 수 있을까
마량포구를 출발한 남파랑길 81코스는 가우도를 넘어서는 청자다리에서 끝이난다.
가우도는 강진의 보석같은 섬이다. 그만큼 많이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섬과 숲길과 강진바다와 가우도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가슴에 안고 간다
가우도는 섬의 앞뒤방향으로 두개의 다리가 연결한다. 여유가 있다면 가우도를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출렁다리앞에서 길을 멈춘다.
시인 정현종은 그의 시 "섬"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코리아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파랑길 83코스(舊 목리교~강진 도암농협)다산 선생이 걸어간 유배길 (2) | 2023.04.29 |
---|---|
남파랑길 82코스(가우도~강진 舊(구)목리교) 남도여행 1번지 (2) | 2023.04.24 |
남파랑길 80코스(회진시외버스터미널~강진군 마량항)섬들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로 살아간 이청준 (0) | 2023.04.18 |
남파랑길 79코스(원등마을~장흥 회진시외버스터미널) 되돌아 보는 길 (3) | 2023.04.14 |
남파랑길 78코스(율포솔밭해변~장흥 원등마을회관)여행이란 무엇인가 (0) | 2023.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