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은 정남진의 다른 말, 같은 표현이다. 강원도 강릉의 정동진이 서울 광화문으로부터 정동의 나루라는 뜻에 착안하여 장흥군이 만든 이미지 브랜드로 서울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일직선으로 내려오면 닿는 곳이 장흥이라고 한다.
장흥의 지리적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실제로 장흥은 정남쪽 바닷가로서 봄이 오는 길목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흥군의 산과 들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축복의 땅 장흥구간의 남파랑길을 따라가보자
남파랑길 79코스는 장흥땅 원등마을을 시작으로 상발마을, 사금마을을 지나 삼산방조제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다
일직선으로 길게 놓인 방조제는 정남진전망대까지 이어지다 한승원 문학길을 돌아 회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끝이난다
상발전망대에서 득량만의 풍광을 즐길 수 있으며 걸음이 힘들어질 때 즈음이면 정남진 전망대에셔 남도바다 섬과 섬들을 바라보며 피로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풍경을 눈속에 담기만 하면 된다
어제 지나온 남상천 너른 갈대숲을 바라보며 길을 열어간다
남포마을까지는6km, 2차선 도로가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다.
장흥군에서 설치한 남파랑길 이용안내문과 두루누비 안전여행 가이드라인을 비교해보았더니 몇가지 상이한 내용이 있다
악천후에는 가급적 도보여행을 하지 않는다. 가파른 계속이나 절벽 등으로의 모험은 피한다
이런 내용도 있다 "불필요한 귀중품과 장신구 등은 휴대하지 않는다.." 여행을 하는데 귀중품이 왜 필요할까..
두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 피곤한 발을 마사지하고 있는데 동네할아버지 한분이 옆자리로 슬며시 다가오더니
"운동하는 갑소" "어데서 오는 길" 이냐고 묻는다. 부산이라고 하니 " 아..동래서 왔는갑소" "예 동래가 부산에 있으니 그렇습니다" "근데 일은 안하고 뭐한다고 돌아댕기요" " 여행중이라는 대답에 " 팔자가 좋소 잉" 진한 남도사투리에 반은 알아듣고 반쯤은 눈치로 대화를 이어가다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율포에서 시작한 하루의 여정은 신정마을에서 79코스 일부를 접고 정남진전망대 아래 주차장에서 차박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2022.10.27(목) 신정마을에서 다시 시작하는 길이 힘들지 않은 것은 포근한 날씨때문이다. 61일차
상발마을에서 오래된 우물을 만난다. 우물은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마을의 소식이 우물에서 전해졌고 힘든 농어촌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추억속에서만 남았다
상발마을의 안내해설을 보고 전망대 꼭대기 올라 고저녁한 득량바다를 바라본다
바다건너 고흥의 섬과 득량만 자라섬을 바라보고 장흥땅 바닷길을 걷는다.
바다에 쏟아 지는 햇살을 보며 생명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길은 흐르는 구름처럼 포근하고 따뜻하다. 하늘은 아득하게 푸르고 바다는 파도한점 없다.
멀리 호남땅 5대 명산중 하나인 천관산의 작은 봉우리들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몇차례, 푸른 하늘이 열리더니 다시 고개를 내민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한우 축사이다.
죽전리 신월마을을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움직이는 것은 오직 바람뿐..모두가 고요하다
은빛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바다로 몸을 숙인다. 늦가을 가을 바람이 바닷길을 따라 섬과 섬으로 내려선다
사계절 굴구이집 사장님이 낚시대를 무려 8대나 나무걸대에 아무렇게나 걸쳐놓고 문저리 낚시를 하고 있다
슬며시 내려서서 잡았느냐고 물었더니 한마리도 못잡고 물구경만 하고 있단다.
어제도 같은 질문하는 부산사람이 여기를 지나갔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수족관에 잡아 놓은 갯굴이 가득하다. 손님맞을 준비도 않고 문저리만 잡고 있는 사장님은 그래도 행복하단다
손님오면 받고 안오면 낚시하고..사장님 가슴은 언제나 푸른하늘이다
남파랑길은 천관산을 가지 않고 들판사이 농로를 따라 이어진다. 수십개 솟은 봉우리 모습이 마치 천자의 먼류관을 닮아서 천관산이라고 했다는데 오른쪽 듬성하게 솟은 바위군들이 먼류관처럼 보이지 않음은 방향이 맞지 않아서이겠지
고마리와 신등리 마을을 지나고 들판 사이로 길게 뻗은 농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 간다.
옛길의 정취를 느낄 수 없지만 가을 정취는 맘껏 누릴 수 있으니 그것 만으로 만족한다.
며칠전 지나왔던 녹동항과 소록대교가 바다건너로 아련하게 보인다. 정남진 표지석 그 옆자리에 앉아 득량만 너른 바다를 바라보다 지나온 흔적을 따라 기억을 소환한다
정남진표지석에서 시작하는 반월형 해변을 따라 사금마을로 접어든다. 마을표지석이 그 옆자리 이층집보다 더 높다.
멀리서 보면 초승달이 되었다 가까이 가면 평범한 해변이 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깊어가는 가을, 기러기떼가 천관산을 향하여 비상하고 있다.
소나무 몇그루 바위틈에 자리잡고 있는 기와집과 바다와 이승우문학지도와 기러기떼를 찬찬히 음미하며 장흥의 아름다움을 배우며 길을 간다.
정남진 전망대 가는 길은 멀다. 갈림길 조차 없는 삼산방조제길은 너무 길어 단조롭지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뜻밖의 풍경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섬과 섬들이 줄을 지어 서있는 득량바다는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뛴다. 특별한 선물이다
길이 3km, 너무 고요하고 너무 길어 마치 시간이 멈춘듯하다
장흥이 낳은 소설가 한승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남진의 바다는 모든 생명을 품어 기르는 천관보살의 넉넉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장흥을 장흥답게 하는 것은 정남진도 아니고 키조개 삼합도 아니고 한승원도 아닌, 바로 장흥의 바다이다
정남진 전망대는 장흥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장흥의 풍경과 다도해의 수많은 섬과 섬들을 뚜렷히 기억한다
다도해 바다를 두리번 거리며 섬과 지도를 비교해보지만 선뜻 눈속에 들어오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넓고 그만큼 많다. 그런 장흥이다
정남진 전망대 안중근 동상과 장흥은 어떤 관계일까..
안중근의사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장흥땅에 있음은 우연일까. 인연일까.
정남진 전망대를 내려서면 길은 대중스타조각공원을 지나간다
유명연예인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는 곳인데 영화속 장면을 연출하여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 듯 하지만 조각상을 보고는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갤러리 까페 SOSO의 커피한잔이 더 기억에 남는다
우도마을을 지나고 우도방조제길을 지날때 즈음 다시 바다를 만난다. 바다 건너 녹동을 바라보며 차도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신상마을이다.
조금씩 지쳐가는 시간, 250살 먹었다는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발마사지를 하고 한모금 물로 갈증을 해소한다.
한발자욱이라도 잘 못 디뎠다가는 똥냄새나는 은행열매를 밟을지 모르기에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신상마을은 소설가 한승원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이청준의 소설이 그러하듯 한승원 소설의 원천 또한 고향이 절반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땅도 남도땅 바다가 다수인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바닷가의 삶을 주어담아..."라고 표현했을까
신상마을을 지나 한승원 문학길을 따라 걷다 옛 물건 하나를 눈에 담는다.
벼껍질인 등겨를 바람에 날리기 위해 만든 기계 "풍구"이다.
조상님들이 사용한 농기구로 풍구속 날개를 돌려 먼지나 껍질등을 제거하였다고 한다.
한승원소설문학길의 번덕지는 한재고개 아래에 있는 쉼터이다. 기슭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하는데 한승원 삶의 길목에서 만난 쉼터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수백년의 역사와 민중의 삶이 살아 숨쉬는 번덕지에 서서 잠시 걸어온 길을 생각하며 뒤돌아 본다
장흥군청에서 제공하는 한재고개 해설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 한승원의 작품가운데서 신화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낸 공간이다 그는 신화 연작을 썼는데 그기에는 여신같은 존재인 순이가 등장한다. 그 세상에서는 순이의 표정과 차림세와 행동에 따라 풍년이 들기도 하고 흉년이 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한재고개는 한승원이 소설적 모티브를 제공한 장소이자 옛길의 정취를 고스란이 간직한 한재고개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완만한 경사길의 한재고개를 넘어서서 아랫마을 덕산마을을 지나고 회진항으로 접어든다.
고갯길에서 내려다본 회진항은 소박하지만 넉넉한 풍경을 건네준다.
남파랑길 79코스는 회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끝이난다. 이길이 끝나면 장흥이 낳은 천재이자 관념적 소설가인 이청준의 길로 다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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