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정해진 길을 가는 것 보다 차라리 계획이 없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쉬어가는 여행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디테일한 계획은 자유로운 여행을 방해한다. 쉽고 편하게 걷고 차라리 몸을 힘들게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파랑길은 다르다. 남파랑길은 구간별로 코스가 정해져 있으며 코스별로 쉴때와 걸을 때가 미리 예정되어 있으니 디테일한 계획과 사전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알고 가면 즐겁고 더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소풍가기 전날의 마음까지 더해진다면 더바랄게 없겠지..
남파랑길 77코스는 보성땅 선소항의 비봉마리나를 출발, 선소마을과 금광마을 조양마을을 거쳐 율포솔밭해수욕장까지 15.2km를 약 5시간동안 걸어가는 길이다. 보성다향길이 일부 포함된 구간으로 득량만방조제와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바닷길이 아기자기한 풍경을 연출한다.
남파랑길은 비봉마리나 바닷가 갯바위에 설치한 데크길로 시작한다.
선소어촌체험장까지 데크가 연결되어 멀리 득량만낚시공원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바다길을 감상할 수 있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풍경은 새로워지고 길은 시간을 따라 변화한다. 첫걸음부터 새롭다
선소마을부터 길은 다시 차도로 연결된다. 득량만낚시공원에서 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10월의 햇살 가득한 득량만바다를 내려다 본다. 바다는 생기로 넘쳐나고 때묻지 않은 풍경이 지나간다.
낚시공원은 선소항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다릿돌을 놓아 낚시터와 전망대를 만들었다. 입장료를 지불해야 입장할 수 있으며 낚시꾼은 2만원, 구경꾼은 2천원이다. 배를 타지 않고 득량만 바다를 보고 싶으면 낚시공원으로 가시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게 너른 바다풍경을 담아 올수 있다
가을 햇살이 부서지는 득량만 바다건너 고흥방조제공원의 썬벨리 리조트 건물이 숨어있듯 아스라이 보인다.
방조제에서 낚시공원까지 꼬박 4일, 푸르고 햇살가득한 바다를 맘껏 누렸다.
남파랑길은 바닷길만 보는 것은 아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가며 수많은 이야기를 함께 만나고 가슴에 담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건 지중해식 주택이다.
붉은 지붕과 흰색 외벽, 곡선으로 마감한 아치형 출입구 전형적인 지중해풍 건축물이다
득량만 바다를 내려다 보고 앞으로는 길게 정원을 내고 집을 호위하듯 나무를 심었다. 대문을 담장 안쪽으로 설치하여 밖에서 보면 대문이 없는 것 처럼 보인다.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하면서도 낭만적이다.
이름그대로 득량만의 은빛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펜션을 지나고 청포마을을 스치듯 지나간다
청포마을을 나와 2차선 도로를 따라 남파랑길이 계속 이어진다
객산마을 뒤로 웅장하고 거대한 바위 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위도 표정이 있다면 객산마을 큰바위는 맘씨좋은 시골 할머니 웃음을 닮았다.
객산마을을 지나고 다시 2차선 도로를 따라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던 길은 연동마을로 이어진다.
연동마을 앞 초록 밭에는 하얀 감자꽃이 활짝 피었다. 하얀 꽃이니 하얀 감자가 틀림없다
보성 다향길은 모두 4개코스 42.195km의 보성의 주요관광지와 유적지를 돌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의도적인지 우연인지 마라톤 풀코스와 거리가 똑 같다. 남파랑길과 일부 구간이 겹친다
연동마을 지나 바닷가로 이어진 길은 내만으로 깊숙하게 들어왔다 다시 넓은 바다로 향한다.
그길에 피어난 갈대잎이 바람에 눞고 순간순간 향기로운 갈향을 사방에 흩뿌린다.
아무도 없으니 일단 자유롭다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사방을 둘러보면 보이는 건 아득한 갯벌이고 끝없는 푸른 하늘이다
다향길 2코스는 득량만 드넓은 갯벌과 논밭 사이 제방길은 아늑하고 부드럽다. 바람이 불면 황토 먼지가 날릴 듯하지만 내가 걷는 계절, 이 시간만큼은 편안하다. 그늘 자리에 앉아 갈증을 해소하고 잠시동안 휴식을 취한다.
듬성 듬성 언덕배기마다 형성된 마을은 고저녁한 어촌의 풍경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드넓은 농토와 살찐 갯벌을 가진 석간마을이 그중에 으뜸이다.
석간마을을 지나 갯벌길 따라 보성땅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바다 건너 고흥땅이 보이고 끝없이 펼쳐진 갯벌이 보성땅과 연결되어 생명을 키운다. 서해안 갯벌보다 더 살찌고 더 부드러워 철마다 풍요로운 선물을 사람들에게 선사한다
붉은 장화를 신은 어부들이 갯흙을 파헤쳐 낙지를 잡고 있는 풍경은 여행자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이된다
금광마을 갯벌 앞 펜션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 Time To Say Goodby"가 흘러나오는 지금은 오후 3시, 펜션에서 놓은 듯한 벤치에 앉아 보첼리의 음악을 듣는다.
좋은 노래와 아름다운 풍경만 있어도 아직도 가슴이 뛰고 마음이 설레이는 나를 어떻게 할까
가슴장화를 입은 아주머니 한분이 능숙한 솜씨로 낙지를 잡고 있다.
몇삽뜨지 않아 낙지 한마리를 잡아 바구니에 넣는데 그옆자리 계속 헛발질 하는 남자분과 대비되어 웃음이 절로 난다.
사진의 갯벌가운데를 돌로 경계를 놓은 선은 오른쪽은 마을 갯벌 어장이며 왼쪽은 갯벌체험장임을 알려주는 경계선이다
해안데크길을 따라 바닷길과 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갯벌과 짙은 수향을 내뿜는 소나무와 푸른하늘과 바다가 서로 마음을 나눈다. 길은 어느새 율포해변이다. 솔밭까지는 금방이다.
사람없는 율포파랑책방 평상에 기대 앉아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남파랑길 77코스는 보성땅 율포솔숲해수욕장에서 끝이 난다. 넓은 주차장과 잘 정비된 도로와 여러 편의시설은 오랜만에 만나는 문명의 손길같아 일단 누리기로 한다. 해수녹차탕을 찾아 하루의 피로를 풀고 저녁은 인근 식당에서 소찬을 즐겼다
율포 솔밭낭만길에서 만난 바다로 하늘의 구름이 빠져든다. 오늘밤하늘에서는 별과 은하수가 쏟아져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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