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비가 몰고 왔을까. 이른 아침 공기가 차다. 아침 7시에 출발 서촌마을, 10시에 도착하여 코스를 시작한다
2번째 원정을 시작하는 오늘 10.6. 하늘이 낮게 내려 앉아 너른 들판에 가깝고 봉래산 풀잎은 밤새 내린 비로 다 젖어 있다
첫걸음이 중요하니 오늘 만큼은 어떤 풍경이 걸음을 막더라도 마음을 활짝 열어 꼭 담아두고 걸어갈 일.........
남파랑길 57코스는 여수 원포마을을 시작하여 봉화산 임도와 이목마을을 지나고 다시 서이산 임도를 걷고 걸어 여수 서촌마을까지 이어지는 거리 18km, 약 5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로 여수만과 가막만, 여자만 등 여수의 해양경관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서촌마을까지 편의시설 하나 없는 코스이니 사전에 걷기에 꼭 필요한 물품은 미리 준비하실 것.
아름드리 마을 당산나무이파리에서도 가을이 조금씩 깊어가고 있다.
가을은 한여름 키워온 알곡을 살찌우게 하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결실을 맺게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마을을 벗어난 길은 이제 봉화산 등산로로 안내하고 있다.
봉화산 길위에서 바라본 원포리 마을은 뜻밖에도 산과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분지형 농촌이다.
분지 중앙은 비닐 하우스와 논밭이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싸듯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봉화산 중턱에서 만난 바위 아래 가을의 전령사 구절초가 다른 잡초사이에서 고혹스럽게 피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제 내린 비탓인지 임도 풀잎들이 이슬을 머금은 듯 젖어 있다.
그리고 다시 만난 하얀 구름 피어나는 푸른 하늘..갑자기 뭉클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혼자서 걷는 길이 가벼워지고 넓어진다. 아무것도 없는데...
임도 끝에서 다시 만난 여수바다..
장수리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서 수많은 섬들중 하나를 내려다 본다 .
멀리 고흥반도가 보이고 팔영산 영봉들이 안개속에서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고봉산 가는 길을 버리고 산 중턱으로 난 길로 내려선다. 여수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횡단도로 그 앞에 정자를 놓고 작은 공원을 만들었다. 오늘 점심은 여기서 먹기로 하고 가까이 갔더니 벤치는 깨어지고 정자와 그 주변은 온통 쓰레기더미다. 세상에 이런 일이..그렇지만 어쩌랴 허기는 지고 목은 마른데..
산속으로 길게 난 자매로를 따라 경사진 차도를 따라 걷는다. 인적도 없고 다니는 차도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급할 것도 없다.
남파랑길 위험구간을 알려주는 위험싸인을 뒤로하고 한참동안 차들이 질주하는 찻길을 따라 걷는다.
그 아래 작은 마을 산으로 둘러쌓여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산전마을로 내려선다.
환삼덩굴 너머 고구마 밭에서 모녀로 보인 두사람이 고구마 덩굴을 걷어 내고 있다
고구마 순으로 요리한 반찬은 맛있다. 특히 살짝 되쳐 된장과 버무려 만든 나물은 "밥 한그릇 뚝딱" 금방이다
짓지도 않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건 없건 가만히 앉아서 쳐다 보지도 않는다.
자세히 보니 너무 잘 생겼다. 일본산 아끼다 견일지도 모르겠다. 의젖한걸 보면 진도같기도 하고...
구미지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고 있으려니 저수지에서는 붕어 수백마리가 떼를 지어 입을 물밖으로 내고 원을 그리듯 빙빙 돌고 있다. 잔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수면을 자세히 보아도 그림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특별한 구경거리다.
전동마을 보호수 아래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옆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당산나무 앞에는 마을회관이 있다
다리를 건너는데 "주차시 토지이용료 부과"라고 붉은 글씨로 크게 씌여져 있다
도시인들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마을에 어울리지 않은 경고문이다
벤치에 앉아 양말까지 벗어놓고 한참을 쉬면서 발마사지를 하는데..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곁눈으로 쳐다 본다
안되겠다. 빨리 가자..나도 눈치가 있다.
구미마을 차도에 조를 말리고 있다. 이삭털기가 어려운 곡물인지 지나가는 차바퀴를 이용하여 탈곡을 하고 있다
이색적인 풍경이긴 하지만 쪼그리고 앉아 작대기로 털어대는 걸 본적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편한 방법이지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입으로 들어가는 곡식을 차바퀴로 털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구미마을에서 다시 만난 바다, 저 언덕을 올라서면 더 넓은 바다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탱자나무는 가시가 달려 있는 대표주자이다. 가을이 오면 둥글고 향기로운 노란 열매를 가시 사이마다 매달고 있는데 손이 찔리는 걸 마다 않고 큰놈으로 한개 따서 주머니에 넣는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등장하는 탱자는 가시가 억세고 뾰족하여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었지만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멀리 고흥반도가 아스라히 보이는 여자만의 푸른 바다가 이목마을 남쪽을 향하여 넓게 펼쳐져 있다
경사진 황토밭에서 조이삭이 고개를 숙인채 추수를 기다리고 있고 고기잡는 배들은 포구를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처음 경작한 작물로 피, 수수와 함께 교과서에 등장하는 조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구황작물이었으나 지금은 영양 가득한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생긴 형태가 강아지풀과 비슷하게 생겨 검색해 봤더니 같은 종이라고 한다
그 씨앗을 좁쌀이라고 하는데....알이 작아서 그랬는지 부정적인 단어가 되었다..에이 좁쌀 같은....
가을..노랗게 익어가는 들판과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둥근 호박..가을을 초대하여 잔뜩 살을 찌우고 있다
이목마을 바다건너 팔영산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는데 마을 노인분이 지팡이로 불편한 몸을 지탱한채 쳐다보더니
"여게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 예 부산사람입니다" " 동래 온천장 있는 그 부산 말이요" " 예"
"근데,,지금 머 한당가" " 걷기 여행중"이라고 하니 " 운동하는 갑네" 하신다..
"예 맞습니다. 지금 운동중입니다" " 조심해서 댕기소"
표현이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지친 몸을 안아 일으킨다
길이 시키는데로 이목마을 지나 서연마을 방향으로 섬숲길을 시작한다.
여자만 갯노을길 섬숲길은 멀리 팔영산을 바라보며 언덕을 오르고 다시 서이산을 오른다
바다와 하늘과 소서이말 동네가 저마다의 색으로 그려진 풍경을 보고 있으니 편안해진다.
잔뜩 흐린 하늘 ...먼 풍경이 다가와 가슴에 안긴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되는 풍경이다
소서이말 작은 포구를 내려다보며 서이산 임도로 진입한다
서이산은 산정상 바위형상이 쥐의 귀모양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화양면 서이산임도 갈림길에서 섬숲길 임도로 안내한다. 낙엽이 떨어져 뒹굴고 있는 임도에 소리도 없고 새로움도 없는 길이 1시간 이상 계속된다. 적막은 때로 두려움을 안긴다.
성령의 불의 제단이라고 이름붙여진 기도원에서 개들의 울부짖는 울음이 질서없이 떼창으로 들려온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 아무도 없는 임도, 텅비어 있는 듯한 기도원 건물안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수십마리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아찔한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임도 중간에 탈출로가 없는 서이산 임도길 섬숲길이 지겹도록 계속 이어진다. 이제 개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하얀 억새풀이 바람결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는 언덕배기에 서서 마치 숨은 그림같은 교회당이 시야에 들어온다.
서촌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내리막을 천천히 걷는다.
남파랑길 57코스는 서촌마을 회관앞 느티나무가 서있는 작은 주차장에서 끝이 난다
기대만큼 가슴을 울리는 풍경도 아니었고 그림같은 뷰를 선사하는 바다는 더욱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눈이 보인다
귀가 들리나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고맙다!
인생은 아름다워 _쥘르나르(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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