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마지막 날 여수 가사리갈대체험장을 가득 메운 안개가 아침을 열어제끼더니 좀전에 보았던 풍경이 신기루였던가 싶게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웅천에서의 차박을 기대하였지만 캠핑장과 주차장이 따로 떨어져 있는데다 차도와 접해 있어 인근 가사리까지 이동후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새벽의 일이다
갈대숲이 피워놓은 안개때문인지 떠오르는 아침해가 찬란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물안개가 유유히 사라져 가는 가사리에 은빛머리를 풀어헤친 갈대가 세상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이 변해도 이 풍경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자리 그대로 있었으면...
그리고 다시 소라초등학교 건너편에 서있는 53코스 안내판으로 되돌아 와서 코스를 시작한다
남파랑길 53코스는 여수 소라초등학교를 출발, 여천역으로 이어지는 옛철길을 따라 미평공원을 지나고 여수종합터미널까지 길이 11.3km를 약 3시간 동안 걸어가는 짧은 코스이다. 출발시각 09:00
첫걸음은 소라초등학교 앞 골목길에서 시작되어 쌍봉천변의 우레탄으로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가끔 라이딩하는 사람들을 빼면 아무도 없다. 옛 철길을 만날 때까지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쌍봉천 산책로를 벗어나 강한 햇살과 피할 나무그늘조차 없는 선원뜨레 공원으로 이어진다.
산책하는 사람들과 부지런히 오가는 차량들, 더 높은 빌딩, 생각을 바꾸면 찬란한 햇살과 눈부시게 빛나는 장소가 된다
옛철길 공원은 길거리 갤러리로 변신하였다. 남도땅이 품고 있는 다도해의 섬들과 산과 들판을 빠짐없이 작품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한 자연 갤러리다
굴삭기 한대가 길과 언덕을 모두 허물고 먼지 폴폴 날리며 공사를 하고 있다.
지명에 따라 선뜨레공원도 되었다가 원학동 공원이 되기도 하고 신기동 철길공원이 되기도 한다.
철길공원은 KTX 전라선이 개통됨에 따라 폐선된 옛 전라선을 공원화 하였다고 한다. 기찻길을 활용하여 경사가 없고 완만하여 현재는 체육공원과 자전거도로, 시민휴식공간으로 재탄생하였으며 소라초등학교 앞 덕양교에서 만흥공원까지 16km의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길은 사방이 조용하다.
철길공원에 모처럼 만난 그늘이 반갑고 가을 햇살 받으며 길은 조금씩 풍성해진다. 아...좋다..
갤러리가 무엇인가. 미술품을 전시하고 작품과 관람객을 연결하는 만남의 장이 아닌가..?
여수시가 주관하고 아르블루조형연구소가 진행하여 다양한 장르의 여수지역 예술가들 30여명이 참여.조성한 미평지하보도갤러리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연그럽게 다가설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가야할 길이 멀어 모두 감상할 수 없어 아쉽지만 시간과 나 자신을 강요할 수는 없다.
전어를 시어로 표현한 가을 전어가 인상깊어 시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석쇠가 달아오르면 은빛 바다가 익는다
전어 굽는 냄새만으로도 가을이 왔다
바짝 엎드린 채 누워있는 저 수평선
생소금 짝짝 뿌려대면 파도 소리 들린다
함께 누운 윤슬 곁에서 반짝일때
토독 가슴 터지게 하는 것은 당신 아닌가
몸속에 숨겨놓은 저 연한 가시
이젠 그림자 하나 움직일 수 없는데....
.......
(하략)
- 여수시인 임호상-
전어는 가을이 제철이다. 가을 전어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할만큼 고소하고 맛이 있다.
소주 한잔이 절로 생각나게 하는 전어를 이정도로 실감나게 표현하였으니 임호상 시인은 정말 시인이다.
남파랑길 53코스는 철길공원이 끝나는 만흥공원까지 다 가지 않고 여수 종합터미널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그만 내려서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찻길이다.
남파랑길 53코스는 여수버스종합터미널에서 끝이난다. 짧은 거리, 긴 여운을 주는 53코스는 곧장 여수 엑스포 공원으로 이어진다. 내륙을 따라 한참을 걸어왔으니 이제 바다가 보일 때도 되었다.
갈 길이 따로 정해져 있으니 남파랑길 아닌가
못다쓴 가을 전어를 감상하며 53코스를 마감한다
- 가을 전어-
................................................................
온몸이 아작 나고 머리까지 씹혀야 비로소
가을전어가 된다
영리하게도 머릿속에 몰래 숨겨놓은 것은
아, 탱글탱글한 파도
소주한잔 들이키자
파도의 뼈가 아작 아작 씹힌다
가을 전어 떼지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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