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1코스는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의 귀양지였던 궁촌(레일바이크정류장)을 출발하여 덤프와 레미콘 차량이 질주하는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동화속 그림같은 동막마을을 만나기도 , 부남천이 흐르는 하천변 청보리밭을 만나기도 한다.
위험한 차도와 사람인적 조차 없는 고요한 하천변길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9.6km의 짧은 코스지만, 강원산간지방의 작은 마을과 맑은 하천, 덕봉산이 가치를 더하는 덕산해변이 지루함을 충분히 보상한다.
정호승 님의 "봄길"을 읽으며 나도 고향같은 길을 떠난다. 봄길, 걸어가는 사람. 강물, 새, 하늘과 땅.........................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궁촌레일바이크역 앞 동막리 방향 차도에 설치되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레일바이크 고객을 위한 주차장은 잘 정비되어 있으나 주차장과 인근 지역의 차박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소나무사랑은 유별나다. 곰솔은 해송이라 불리는데 바닷가 인근에 주로 서식하고 있다
껍질이 붉고 아름다운 육송은 금강소나무와 적송이 있는데 특히 금강송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옛 궁궐을 짓는데 없어서는 안될 재료였다.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예약에 의해 탐방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숲길을 따라가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www.uljintrail.or.kr/)
애국가에도 소나무가 나오는 걸 보면 한국인의 소나무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공양왕의 애환을 간직한 궁촌을 떠나 동막리까지 7번 국도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사람다니는 길조차 없는 찻길에는 덤프트럭과 같은 대형차들이 먼지를 날리며 위협적으로 질주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걷고 있는 건 맞겠지..쉽사리 적응하기 어려운 이런 풍경은 머리속에서 빨리 지워야겠지.
그렇게 걸어 동막리까지 왔다.
동막리 다리 건너 왜가리가 먹이를 찾고 있는 부남천변 제방을 따라 걷는다.
맑고 투명한 강물을 보면 유년시절 고향의 강물을 닮았다는 느낌을 뿌리칠 수 없어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길을 이어간다
7번국도와 부남천은 풍경의 반전이다. 7번 국도가 혼돈이라면 부남천은 평화이다
참새가 떼를 지어 보리밭으로 숨어든다. 재잘거리며 드나들던 참새들이 사람 발자욱소리를 듣고는 지저귐을 멈춘다
대낮 기온이 서서히 올라 겉옷을 벗어들고 넓고 길게 뻗어 있는 청보리밭길을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걸어간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시멘트포장길이지만 마치 시계바늘이 멈춘듯한 적막이 흐른다. 들리는 소리는 오직 냇물 흐르는 소리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적막이 흐른다.
적막과 보리밭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지만 무의미한 단어는 전혀 아니다.
세상에는 우연의 일치라는 개념도 있고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무수히 많지 않은가.
재미는 없지만 그때는 적막을 깨는 소리가 필요하다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콧노래를 부르며 부남천변을 휘적휘적 걸어간다
삶의 뿌리는 태어난 곳에 있다.
삶의 영역을 넘나들기 어려운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 같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강원도 산간 작은 마을, 태어난 곳을 떠나지 않고 농부의 삶을 이어가는 마음에 경건함을 느낀다
덕봉대교 아래를 흐르는 마읍천 물빛이 푸르다. 마읍천(麻邑川)은 삼척 사금산에서 발원하여 덕산해변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이곳으로 은어가 회유한다.
덕산해변 덕봉산이 마치 왕릉을 옮겨다 놓은 듯 하다.
최근 군사보호지역을 해제하고 개방하였다고 하는데, 산책로를 만들고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공원으로 변신하였다고 한다
맹방해변 입구가 해파랑길 31코스의 종점이자 32코스의 시작점이다.
강원도 고성까지 267km 남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나온 길 510km , 걸어온 길과 남은 길.
만만치 않은 거리이지만 지나온 풍경을 사진 한장으로 그려내던 시간들이 뜨오르고 남은 거리와 시간은 가벼운 긴장감을 안은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신발끈을 고쳐맨다.
이제부터 명사십리 맹방해변에서 추암으로 이어지는 32코스를 걸어야한다.
조금더 여유롭게, 또 유연하게,,한 풀듯 걷지 않고 정취를 느껴가며 묵묵히,,천천히..
★ 해파랑길 31코스 정보
- 궁촌역을 지나면 매점이 없으므로 미리 식수와 도시락 준비
- 31코스 종점인 맹방해변은 화장실과 주차장이 잘 구비되어 있어 차박하기 용이하며 백사장에서 낚시를 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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