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을 먹고 감포읍 연동리의 한 작은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일찍 일어나 창가에 서니 아침바다를 뚫고 동해로 솟아 오른 일출이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연동항은 잠들어 아직 적막이 도는데 고깃배는 일찌감치 바다로 나가 뜨오르는 해를 향하여 그물을 펼친다.
해파랑길 13코스는 지금까지 보았던 풍경과는 너무 달라서 비교할 수 조차 없다.
어느 해변에서도 만날 수 없는 검은 바위와 부서지는 파도, 바람이 불면 솔향기 가득한 숲이 다가오면 수평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왜 다른 풍경과 느낌으로 다가오는 지 오늘 만큼은 바다가 내어주는 선물을 조금씩 아껴가며 걸어야 겠다. 걷다 지치면 쉬어도 가고, 힘들면 콧노래도 불러가면서 원시의 바다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해파랑길 13코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보자
연동항 모텔방에 맞이하는 동해일출
기쁨은 화려하고 크다고해서 반드시 좋은것만은 아니다. 일상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동해바다 해오름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양포항의 해파랑길 13코스 안내도와 인증대
해파랑길 13코스는 양포항을 출발하여 신창리 해변과 대진해수욕장, 일출암을 지나 영암갓바위를 경유하는 20여km의 제법 힘든 도보길이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양포항에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다.
양포항은 포항시 장기면에 소재하고 있는 작은 어항이지만 주차장과 화장실을 잘 활용하면 낚시를 겸한 차박도 가능하다
방파제를 넘어선 파도가 금방이라도 해변을 덮칠듯한데 햇살아래 고기잡는 어선한척 한가로이 떠있다
아침해가 구름에 묻혔다 나왔다 하는 조금 변덕스런 시간을 반복한다. 바람에 날린 파도의 물방울이 얼굴로 날아들어 잠시 곤혹스럽다고 느끼는 찰나...
눈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장기면 신창리 해수욕장의 거센파도가 해안을 걷고 있는 내게로 덮친다.
얼른 발을 뒤로 빼어냈지만 발이 젖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물세례를 받아 파도에 희롱당한 느낌인데 동무없이 혼자 앉아 있는 갈매기 한마리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모래바닥에 앉아 젖은 발을 닦아내고 바라보니 후릿그물고기잡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소형어선에 그물을 싣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내리면 두대의 배가 양쪽에서 그물을 당겨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을것 같은 느낌 .....막연한 기대일까
도보여행을 꿈꾸는 사람은 사전에 받드시 버스운행시간부터 확인해야한다.
양포와 구룡포간 배차시간은 1시간 50분....택시와 버스는 편안함과 기다림의 차이다, 어느쪽에 무게를 두느냐는 개인사정이지만 은퇴자에게는 아무래도 버스가 기다림의 지루함을 뛰어 넘는 편안함아닐까
신창 간이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에 일출암이 있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 10경의 하나로 선정했다고 전해지는데 기암 괴석위로 소나무가 자라고 그 앞으로 작은 담수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풍경... 과연 육당이라는 생각과 함께 친일파 육당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그러나 아침해가 일출암두개의 바위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변화무쌍한 형태로 세상을 뒤덮는 순간 온몸이 충만해짐을 어떻게 느끼지 않겠는가 .
신창리 어항 너머 산아래로 쪽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해파랑길을 걷는 동안 수없이 많은 절경들을 만났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검은 바위와 세찬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을 보라. 비교할 수 없는 경관이며 지금까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해도 거짓이 아니다.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이 감도는 갯바위와 해안으로 밀려드는 거센 파도의 소용돌이앞에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
풍경이 쉬어가라하면 쉬어가야지. 돗자리조차 편안해지는 야외까페에 앉아 커피한잔하며 느끼는 생각 "오늘 횡재했다"
영암 마을을 벗어나면 바닥이 큰 바위하나로 이루어진 것 처럼 넓고 얕은 암반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데 고기잡는 낚시꾼은 끄떡도 않는다. 바닷길은 곧장 대진 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대진해변에 산더미같은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흰색 건물은 리조트이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에는 비교적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코리아둘레길 따라가기를 실행하면 해변을 지나 직진하도록 안내하고 있었지만 대화천에 가로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다. 한참을 돌아 대진교를 건너는데 좀전에 보았던 대화천이 가로막아 갈 수 없는 길이 멀리 보인다
이럴때 걷는 사람은 힘이 빠진다. 오른쪽 건물은 해병대 제6 생환 전투단 건물이다
모포항 마을 해변에는 아귀를 줄에 꿰어 건조하고 있어 자세히 보았더니 아귀를 반으로 쪼개어 빨래줄에 걸어놓았다. 한적한 어촌 시골동네를 다 지날 때까지 인기척조차 없는데 오늘 따라 유난히 강한 바람이 길가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모포항에서 없는 길을 만들어 저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해변에 널려있는 쓰레기더미에 갑자기 배가 고파지고 배낭이 짓누르는 어깨가 불편해진다
바람막아주는 언덕배기 퍼질고 앉아 식을 대로 식어 딱딱해진 김밥 한줄로 점심을 대신하지만 쉽게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입안에서 맴을 돈다. 생수조차 떨어져 마지막 남은 커피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걸음을 옯긴다
"집나오면 개고생" 두번째 쓰는 용어지만 앞으로도 계속 씌어질 지 누가 알겠는가.
동해안 특유의 육상 양식어장.
콘크리트로 파도를 막고 안쪽에 양어장을 만들었다. 양어장 같지 않고, 마치 공장해수를 담아두는 곳 같은데 물속에서 고기가 움직이고 있는걸 보니 양식장이 맞긴 맞는가 보다
그때 갑자기 집채만한 검은 개가 목줄도 않은채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을 하는데, 혼비백산한 나는 배낭을 벗어 방어를 하면서 겨우 뒷걸음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길을 걷다보면 갑자기 개를 마주치는 경험을 가끔하게 되는데 급하게 뒤를 보이지 말고 천천히 배낭으로 방어를 하면서 뒷걸음질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무난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물론, 안만나는게 가장 좋지 .
양식장 주변 갯바위에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어망안을 들여다보니 손가락 굵기의 학꽁치가 가득하다.
해가 구름속으로 숨었다 다시 얼굴을 드러내고 바람이 불었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날씨가 계속된다. 이런날은 걷기 힘들다
양식장 주변 갯바위 멀리 장길리 보릿돌 다리가 보이는 걸 보니 구룡포가 멀지 않았으니 조금만 힘을 내자
장길리 낚시 공원
장길리 마을 할머니들이 가자미를 말리고 있다. 빨래줄 같은 줄을 나무에 매어놓고 그위로 가자미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이런 풍경은 걸을 때 느끼는 지루함을 해소시켜준다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완전 걷히고 바람조차 약해질 무렵 하늘에서 솥아지는 봄햇살이 사뿐사뿐 내려온다
발걸음도 따라서 가벼워진다
장길리 포구에 구명정으로 만든 정자가 설치되어 있는데, 호기심으로 올라가 앉아보았다.
구명정 정자..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앉아 보면 바다가 조망되는 구명정쉼터가 너무 잘 어울려 커피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커피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왔지만 아이디어가 산뜻하다.
장길리 낚시 공원 해상펜션.
장길포구에 설치된 수상 데크를 따라가면 보릿돌다리가 보이고 작은 공원이 나타나는데, 바다위로 설치된 데크위에서 바다물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더니 몰골이 형편없다. 배는 고프고 목은 갈증으로 힘든데 평일이어선지 코로나 때문인지 문을 열고있는 편의점이 보이지 않는다
다리끝 갯바위가 마치 보리같다고 하여 붙여진 보릿돌다리가 거센파도로 입장을 통제하고 있다.
발아래 불어오는 동해바다를 느낄 수 있는 찬스를 놓쳐 아쉽지만 바람이 너무 강하여 건너기가 쉽지는 않을 듯..
경외심마저 들게 하는 보릿돌 공원 해변
검은 해변절벽으로 파도가 덮치고 있는데 용감한 몇몇은 위험하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에도 바닷가로 내려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발아래 펼쳐지는 땅과 바다에는 태양만 밝게 빛나고 있다.
언덕위 몇그루 소나무가 바람을 맞아 윙윙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거센바람과 높은 파도가 해변으로 몰아치는데
멀리 오늘의 종착지인 구룡포가 보인다
하정리해변 건조장에서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길은 GPS가 알려주는데로 가면 되지만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때 길눈은 별의미가 없고 코리아 둘레길 따라가기 표시를 유심히 살펴서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지름길을 찾다 자칫 길을 잃는다.
병포리를 지나면 구룡포항이다. 아홉마리 용에서 이름이 유래한 구룡포항은 동해안의 대표적 어항 중 하나라고 한다.
구룡포읍내 구룡포 전통시장.
아무리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아도 호객하는 대게집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
먼저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받아들고 종점으로 향하다 버스시간표를 보니 운좋게도 양포행 버스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일본인 가옥거리 앞 주차장에 해파랑길 13코스 종점과 14코스 시작을 알리는 현황판과 인증대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13코스를 마무리한다.
양포에서 출발하여 20km를 거의 6시간동안 걸었다.
길을 걸으며 수많은 해변과 송림과 기암들을 만났다.
바다는 봄의 시샘이 만들어 내는 바람과 낮은 기온, 부실한 준비탓으로 걷는 내내 힘들었다.
하지만,걸어가는 동안 변화하는 바다와 풍경을 새로움으로 눈에 담았고 검은 바위 검은 바다를 수도 없이 보았으니 오늘은 운수대통한 날이다.
살아 꿈틀거리며 생명이 살아 숨쉬는 동해바다는 억센 파도와 혼란한 세상에서도 우리들에게 위안을 준다.
따뜻한 봄바람은 남에서 북으로 불어간다.
걸어가는 뭇 사람들에게 축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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