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땅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없는 땅끝에
혼자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나.
- 김지하 -
김지하는 "애린"을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를 뜻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땅끝은 더이상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뜻하고 있는 건 아닐까.
,22.11.10. 71일차
남파랑길 1,470km 90개 구간의 마지막 종착지인 90코스는 달마산 미황사 천왕문을 출발, 달마고도를 지나고 땅끝전망대를 지나 국토의 최남단 땅끝탑까지 이어지는 13.9km의 의미있는 길이다. 소요시간 6시간
달마고도를 지나고 연포산을 비롯한 높고 낮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보면 쉽게 지친다.
짧은 거리에 비하면 걷는 시간과 난이도가 비교적 높아 결코 여유롭지 않은 길이다.
미황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음 버리며 오르는 108계단"을 지나야 한다.
108 돌계단을 지나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미황사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 붉고 노란 단풍으로 가득한 미황사 경내로 접어든다.
둥근 돌확에 가득한 돌샘에서 떠올린 한바가지 물은 미황사를 찾아온 사람들게게 갈증을 해소해주는 생명수가 된다
천왕문을 지나면 미황사 일원과 관련한 안내판이 나오고 우리는 그곳에서 미황사의 유래와 달마산의 아름다움과 창건기록까지 알아볼 수 있다
"백두대간에서 이어진 소백산맥의 끝자락에 우뚝 솟은 산이 달마산이다. 미황사와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나다
산 이름은 달마대사의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과 달마대사의 법신이 상주하는 두가지 뜻이 있다"
달마산의 지형을 잘 살려 여러단으로 석축을 쌓아 건립한 미황사는 같은 방식으로 축조한 영주의 부석사가 무한강산으로 펼쳐진 소백산의 너른 품을 생각나게 한다면 미황사는 달마산의 빼어난 풍광때문인지 장엄하면서도 검소한 아름다움이 먼저 떠오르는 그런 사찰이다
달마산은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기암과 괴봉이 12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로 풍광이 수려하고 힘찬 기상과 장엄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미황사가 자리잡았다.
미황사를 벗어난 길은 이제 점점 더 울창한 숲으로 들어간다.
남도 오백리 역사 숲길이기도 하고 미황사 천년역사길이기도 하다.
달마산 등줄기 아래로 난 길은 오솔길이 되기도 하고 호젖한 사색의 길이 되기도 한다.
숲길을 지나갈 때면 발아래 밟히는 낙엽이 향기를 뿜어낸다. 가을 숲길이다.
그런 미황사 천년역사길에 달마산의 정기 머금은 온갖 나무들이 살고 있다.
사람주나무, 덜꿩나무, 후박나무, 비목, 소태나무, 예덕나무 예사롭지 않은 가을 산에 살고 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길을 지나간다. 금새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에 취한다.
달마산 바위 무더기가 흘러내린 너들강지대를 밟히는 너들에 남긴 흔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간다.
돌길인듯 하지만 누군가의 부지런함으로 만들어진 길을 가볍게 산책하듯 지나가면 된다.
미황사 천년 역사길은 달마고도이다.
달마고도는 땅끝마을 천년고찰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의 주능선을 이어주는 길이 17.74km의 둘레길로 미황사 12개 암자를 연결하는 순례코스이다.
순수한 사람의 힘만으로 만든 길이라서 더욱 가치있는 달마고도는 남도 명품길의 진수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눈과 귀가 촉촉해지는 느낌을 안고 달마고도를 지나간다.
공룡의 등줄기같은 능선을 바라보며 편백나무숲을 지나고 붉고 노란단풍잎 가득한 백합나무 숲을 지나간다.
능선을 타고 흘러내린 오솔길에 달마고도가 뿜어내는 풍광이 장관을 연출한다.
길은 달마산 능선을 뒤로하고 해남의 땅끝으로 향한다. 달마고도를 비껴서서 땅끝 천년숲 옛길로 접어든다
땅끝 천년숲 옛길은 국토순례1번지로 땅끝에서 미황사 구간으로 이어지는 총 52km의 옛길을 정비하여 쾌적하고 멋스러운 노선을 제공하고 있다
계속되는 오르막 내리막이 숨을 차게 하지만 옛길이 주는 넉넉함이 오히려 편안함을 안겨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길로 접어든다. 꼬불꼬불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고갯마루로 올라서면 멀리 연포산 뾰족한 봉우리가 사방을 압도하고 해남바다 흑일도를 비롯한 섬과 섬들이 발아래 풍광을 펼쳐놓는다
높고 낮은 작은 봉우리들을 손가락으로 셀수 없을 정도로 지나왔을 때 비로소 땅끝전망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에는 하얀구름, 바다에는 섬과 섬들이 해남의 풍광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길을 따라 땅끝까지 왔다.
심금을 울리는 풍광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이제 거의 다왔다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내 마음을 모두 채웠다.
땅끝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그 풍경에 기대 서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김지하 선생이 해남에 왜 왔느냐고 오히려 내게 묻는다. 나도 오고 싶어서 왔지..왜 왔겠습니까..
땅끝 전망대에 서서 남도 바다를 내려다 본다.
풍경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땅끝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이땅의 끝이 아니라 한반도가 새롭게 시작하는 곳이며 모든 시작의 첫 지점이다.
땅끝에 세워진 땅끝탑은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땅의 끝을 상징하는 삼각뿔형태의 탑이다. 바다를 향해 꿈을 싣고 나아가는 배의 돛을 형상화한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서서 절망을 털어내고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고 한다.
땅끝 해남의 랜드마크역할을 하고 있는 "토말비" 탑에는 " 이곳은 우리나라 맨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서/ 길손이여 땅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라"고 새겨져 있다
남헤와 서해를 가르는 경계이자 남파랑길이 끝나는 지점이며 서해랑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800 계단을 내려와 땅끝탑 남파랑길 1470km의 끝자락에 서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본다.
서해와 남해바다 모두를 품은 땅끝 바다는 숨이 멎은 듯 고요하고 평화롭다.
스치는 바람한 줄기, 눈부신 햇살 한줌까지 그리워지는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바람도 맛있다는 해남 땅끝마을을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두바퀴나 돌아 눈속에 담았다
길을 걷는 내내 수많은 꽃들과 나무와 하얀 물결과 사람과 사람들이 길위에 있었고, 바람불고 비내리는 날들과 별들이 쏟아지는 밤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찌르르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부산 오륙도에 시작한 남파랑길, 거제도의 섬과 섬들을 품고 있는 푸른 물빛을 넘어서, 남해바다와 고흥반도와 완도의 끝자락을 지나 이곳 해남 땅끝까지 산길과 들길과 바닷길 따라 남파랑길 1470km를 모두 걸었다
해파랑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한 남파랑길의 종점에서 서해랑길을 만났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똑 같은 선택을 했을 코리아 둘레길 남파랑길 끝 지점에 서서 어쩌면 또다시 서해랑길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방해하는 것은 오직 길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을까 하는 마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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