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길에서 만나는 마을들은 시골마을이다. 오래되어 얼룩덜룩 때가 묻고 다 낡아 떨어질 것 같은 대문으로 들어서면 햇살좋은 좁은마루가 보이고 한지를 발라 문풍지가 있는 격자무늬 창살이 있는 그런 시골집은 아무리 시골이라도 쉽게 찾을 수 없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 고구마굽고 활활타는 장작불을 멍하게 쳐다볼 수 있는 그런 낭만도 찾기 어렵다
서까래 처마에 제비가 집을 짓고 쉴새 없이 들락날락하며 새끼를 키우는 풍경또한 그렇다.
지금 걸어가는 남파랑길위의 시골마을도 다르지 않다.
내 유년의 삶이 녹아 있던 시골집과 할머니의 따스한 목소리..그리워진다. 모두가 그립다
두루누비 코스소개를 살펴보자. 남파랑길74코스는 고흥땅 노일리 내로마을회관에서 남양마을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지는 고흥군의 전형적인 어촌 풍경과 해안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메타스퀘어 구간이 볼만 하고 남도땅 소박한 시골마을인 내로마을과 외로마을, 도야마을과 남양마을 등 고흥바다와 시골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며 9.2km를 약 3시간동안 감상에 젖어 걸어가보자
74코스는 내로마을 보건소 앞에서 시작한다. 길걷는 도보여행자 몇몇이 안내도를 보며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내로마을을 벗어나 낮은 언덕을 넘어서면 길은 곧장 해안길로 접어든다.
길은 가을 햇살로 숨이 막힐 듯한데 해안길에서 만난 정자는 바다로 활짝 트여 오히려 시원한 느낌을 준다
처음 만나는 쉼터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다. 모닝빵과 두유한잔, 커피와 바나나 그게 전부이니 점심이랄 것도 없다
모세의 기적은 곳곳에서 일어난다. 죽도가는 길은 갯벌과 갯벌 사이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니 기적은 아니다
솔섬이 더 어울리는 이름이지만 옛부터 죽도로 불려졌는지 그냥 죽도이다
이런 죽도에도 나무가 자라고 가을이 오고 갯벌에는 생명이 깃들어 살고 있다
은빛 억새가 바람에 날리는 방조제 너머로 계룡산이 남도의 산줄기를 이어간다.
썰물의 갯벌은 사람들에게도 삶의 터전을 내어준다. 사계절 낙지와 게와 짱뚱어, 꼬막과 바지락을 선물한다
어디 그뿐인가. 갯벌속의 수많은 생명들을 넉넉히 품어 바다를 살찌운다
외로마을을 지나고 방만마을을 스치듯 지나간다.
시골마을은 빈집이 늘어간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회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마을을 지킨다.
남도땅 어디를 가든 어떤 마을이든 빈집은 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담장은 무너지고 대문은 녹슬어 있다.
그러나 빈집은 빈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유년의 기억이 살아있고 고향의 향수가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은 밭에는 늙은 호박이 누워있고, 계절이 바뀌어도 쑥부쟁이를 비롯한 온갖 야생화가 피고 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구사일생...숫컷 사마귀한마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길을 간다.
사진에 보이지 않지만 암컷사마귀가 덮칠 준비를 하는지 앞발을 위로 치켜세우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
도야마을 회관을 지나고 추수끝난 논길을 따라가는데 서른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도보여행객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화장실이 급한지 내게 물었지만 나도 모른다. 아마 없을 지도 모른다.
급하지 않은 나는 정자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발마사지까지 다 한후에야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난다
사마귀와 메뚜기가 사람을 피해 폴짝 뛰어 길섶으로 숨어든다. 메뚜기를 따라왔을까. 길섶에서 갑자기 나타난 뱀한마리, 나도 놀라고 뱀도 놀랐던지 나온 길로 바람처럼 사라진다.
메타스퀘어가 아름다운 것은 울창한 숲과 변하지 않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직선으로 길게 뻗은 길 양옆으로 심어진 수백그루의 메타스퀘어는 봄에는 초록의 푸르름을 가을에는 불타는 듯한 진한 갈색의 빛깔을 선사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뒤돌아서서 물들어가는 단풍과 날마다 높아져 가는 하늘을 느껴본다. 깊어가는 가을..
노송마을을 지나고 도곡마을을 지난다. 산모퉁이를 돌아 외딴집 가는 길옆으로 노란 국화가 활짝 피었다.
이런 길은 피로가 쌓이지 않는다. 잠시 고개숙여 향기를 맡고 있는데 집주인이 나와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내가 고마운데 향기를 맡아주어 고맙다는 주인장, 그의 은은한 미소가 길걷는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어디선가 이장님 방송이 들려온다.
"아..아..남양마을 이장입니다. 내일부터 벼수매가 시작되오니..." 바람소리 때문인지 방송내용 절반은 잘 모르겠다.
남파랑길 74코스는 고흥의 시골마을 남양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끝이난다.
시골마을 순례는 남양마을에서 잠시 멈추다 75코스에서 다시 이어진다.
마을은 마실이다. 마실간다는 이웃마을에 볼일 보러 간다는 뜻이다.
내 유년의 기억속에는 손자 손잡고 논두렁 밭두렁 너머 마실길 가시던 할머니가 있다. 그립다.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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