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투르게네프는 이야기한다.
죽음도 불사하는 사마귀의 사랑을 살펴보면 진짜 그런 것 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랑을 모두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스칼은 또 이야기한다. 내가 사람을 관찰하면 할수록 내가 키우는 개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러브스토리는 그래서 어렵다.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 당연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세상에 가치있는 일이 사랑밖에 없을까. 분명히 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으니까.
지구를 걷는 일도 그중 하나이다. 그건 여행이다. 이제 남파랑길 73코스를 따라가보자
두루누비에 담겨있는 대로 코스를 소개한다.
남파랑길 73코스는 대전해수욕장에서 내로마을까지어지는 구간으로 해안경관과 내륙을 동시에 조망하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은빛백사장과 수백그루 송림이 빚어내는 남도땅 해수욕장 대전해변을 출발, 다시 예회마을과 금성마을을 지나 내로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 17km, 소요시간 5시간
득량만에 자리한 대전해수욕장은 얼핏보아도 1km는 충분히 되어 보이는 긴 백사장과 아름드리 소나무, 세월에 깎이고 파도에 씻긴 기암절벽 등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해변이다.
대전해수욕장 송림사이로 접어들자 뽀얀 먼지가 발아래로 일어난다. 지난 여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평상과 의자와 찢어진 파라솔등이 곳곳에 널려있다. 길을 열었으니 대전해변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완장찬 젊은 사람하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내 앞에 서더니 해수욕장 사용료와 관련한 이야기를 한다. 지나는 길이라고 했더니 화장실을 사용하면 안된단다
은빛해변을 품은 풍경과 달리 소나무숲안에서는 무질서하고 깨끗하지 못하고 모두 사유화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해변의 샤워장에서 오른쪽으로 농로를 따라 방조제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바다건너 보성땅은 아직 아련하게 멀기만하다
파란 하늘과 황금빛 들판과 썰물의 갯벌이 풍경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낌없이 내어준다
송정마을을 지나고 득량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넘어 예회마을로 접어든다.
시멘트기둥에 누군가 차범근감독 주택신축이라고 지번까지 공개하며 알려주고 있다.
며칠전 지나온 팔영산이 아스라히 보이는 마을까지는 아직 꼬불꼬불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더 걸어야 하지만 탁트여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마을 풍경은 아무리 숨겨져 있어도 감출 수 없다. 명당이다
예회마을 동락정앞에서 마을분에게 물었다. "차범근 축구 감독님 집을 짓고 있다는데 어디쯤인가요"
" 잘 모르겠는디..? 근데 며칠전부터 지나가는 사람이 왜 그걸 자꾸 묻는다요" 하신다.
멀리 팔영산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겨간다.
갯벌의 진수를 알기 위해서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기울여 들어보아야 제대로 보이고 알게된다
갯벌이 내는 소리는 다양하다. 수많은 생명들의 합창이니 그럴만도 하다. 때로는 살랑거리는 잎새같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숨죽여 내는 울음같기도 하다. 눈을 감으면 마치 정글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다
번식기 때의 암놈 사마귀는 식욕이 왕성하여 교미중인 숫컷을 잡아 먹기도한다. 몸크기가 암놈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쌍한 숫놈은 교미가 끝나면 잽싸게 도망치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오늘 본 이놈처럼 먹이가 되기도 한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보니 숫놈의 머리를 사나운 집게이빨로 잘게 씹어대고 있다. (그림자가 더 선명하다)
예회마을을 지난 길은 때로는 임도를 때론 차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하얗게 피어 키를 훌쩍 넘는 억새밭도 지나고 구불구불 이어진 길 옆으로 황금벌판도 지나간다.
천변에 바싹 붙어 신비롭게 보이는 팔각정자를 바라보며 용산천을 거슬러 와룡마을로 접어든다.
잠자는 용이라는 뜻의 와룡은 삼국지의 와룡(제갈공명)을 연상하게 하지만 늘 만나는 시골마을과 다를게 없다
자세히 보니 마을 뒤 얕은 산이 누워있는 용(龍) 처럼 보이기도 한다.
추수끝난 논바다 그루터기가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이 도열한 모습이다.
보통 구불구불한 형태지만 모 심을 때 치열하게 투쟁하듯 심은 느낌이랄까 . 단조롭지만 이것도 풍경이다
금성마을로 접어든다.
오랜된 돌담에 걸어놓은 옛 이야기가 쉴새 없이 들려오는 골목길을 지나고 길모퉁이를 돌아 재촉하듯 발걸음 빠르게 하여 마을을 벗어난다.
멀리 우도를 바라보며 쉴새 없이 수차가 돌아가는 새우양식장을 지나 웃자란 풀들이 길을 방해하는 노일방조제길아래로 난 농로를 따라간다. 뒤돌아보면 팔영산은 아직 그대로이지만 길은 조금씩 바다에서 멀어져 간다
내로마을 광장에서 남파랑길 73코스를 마무리한다.
남파랑길 73코스는 특징없는 길이다.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풍경외에는 별로 볼 것도 없다.
대전마을에서 예회마을로 다시 금성마을과 등촌마을, 길의 끝에서 만나는 내로마을.. 그런 길이다.
마을이 있다고 편의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쉬어갈 휴식공간도 없고 햇살 피할 그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화장실도 없다
언제와도 좋은 길은 흔하지 않다. 걷기 힘든길도 만나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길도 만난다
그러다 보면 좋은 길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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