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방조제공원에 가면 김광섭의 "저녁에" 라는 시가 생각난다.
아마 고흥 하늘의 별과 검은 바다가 있어 그럴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늘 저녁은 그랬다.
별과 나와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캠핑장 아이들 웃음소리, 저물어가는 노을과 저녁별을 지켜보며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남파랑길 걷다가 슬며시 들어와 고흥만방조제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라고...
남파랑길 71코스는 고흥반도의 끝머리 녹동항에서 고흥만 방조제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길이 21.9km의 다소 먼 거리의 코스이다. 소요시간 약 6시간
두루누비의 코스소개를 살펴본다. 길지만 평이한 코스이다. 유명관광자원은 분포하고 있지 않으나 해안가의 작은 마을을 경유하며 안전하게 걷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드라이버 코스로 제격이며 낚시터로 각광받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유명관광지를 제외하면 관광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이른 아침 "햇빛과 손잡은 눈부신 바람"이 녹동을 벗어나는 내게로 향하고 있다. "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이해인 수녀님의 시 가을바람속으로 들어간다.
등교길에서 만난 녹동고등학교 학생 몇이 지나가는 내게 인사를 건넨다. " 안녕하세요"
높아가는 가을 하늘만큼 마음이 가벼워진다
차경마을 대부분의 문패는 두개씩 매달려 있다.
하나는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 나무 문패이고 또 다른 하나는 녹동농협에서 붙여 놓은 부부 공동문패이다.
농협 노란색로고가 주인노릇하는 것 같아도 가부장적 시골 가정에서 부부공동문패의 의미는 크다고 할 것이다
녹동현대병원을 지나고 작은 언덕하나를 넘을 때까지는 계속 찻길이다.
그리고 비늘구름 떠가는 하늘아래 드넓은 황금들판, 추수끝난 들판의 볏짚 향기...
스스로를 다독인다. 향기로워라..향기로워라
들판은 새벽이슬에 흠뻑 젖었고 그 위로 가을 햇살이 빛나고, 하늘은 맑고 깨끗하다.
농촌의 인구감소는 고흥의 시골마을에 먼저 영향을 미친다. 도양중학도 그런 피해자중의 하나이다.
한때 고흥군의 인구는 20만을 넘어 진주시만큼이나 큰 번영을 누릴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7만명도 채 되지 않은 작은 군으로 변모하였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날로 여물어가는 가을길을 간다. 길은 도양읍에서 도덕면으로 이어진다.
끝까지 걸어도 5분이면 충분한 도덕면소재지에도 있을 건 다있다.
우체국과 보건소, 소방서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마트와 넓은 주차장, 식당이 길을 따라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면소재지 마을 한복판을 가로질러 차도를 따라가면 한아름 느티나무 아래 쉼터를 만난다. 첫 휴식이다
나무아래 벽돌의자에 다리뻗고 퍼질고 앉아 목마름의 갈증을 씻는다.
고흥 시골버스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고흥의 찻길은 버스로 인해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갓길을 침범하며 위협하듯 운전하는 시골버스는 겸손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차라리 아무렇게나 운전하고 다닌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몇번 그런 일이 있었다고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다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뜻이며 고쳤으면 하는 바램에서 몇자 옮겨보았다
장전마을을 지나고 회룡저수지를 지나 장동마을로 접어든다.
개성넘치는 멋은 없지만 산골마을은 단아하고 조용하다.
햇살의 기운을 마음껏 받고 있는 연못위로 물고기 몇마리씩 무리지어 유영하고 있다
지나가는 길 양편으로는 온통 배추밭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녹색의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싱그럽다
소금기 품은 바닷바람이 배추밭으로 스며든다.
누군가에게는 배추밭이 풍경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부지런한 일터가 되기에 스프링쿨러 물줄기를 조심스럽게 피해가며 걸음을 옮겨간다.
활처럼 휘어진 당남 해변을 걸어간다. 작은 배가 물결을 일으키며 지나가고 파도가 일어나 모래밭으로 스며든다.
해변의 끝에서 언덕을 오른다. 멀리 득량만의 회색빛 바다가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길은 들량만의 꼬불꼬불한 해안선을 따라 내만깊이 들어갔다 다시 되돌아나가 보성만으로 이어진다.
며칠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걸어가는 길에 가을빛을 더하며 계속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임도끝자락 차도를 벗어나 용동마을로 접어든다. 다시 발길을 바다방향으로 옮겨간다.
그곳에 용동해수욕장이 있지만 지금은 공사중이다.
해변 송림숲을 파헤쳐 휴식공간을 만들고 바다에는 돌출형태의 돌무더기 방파제가 들어설 예정인지 바위를 쉴새없이 바다로 던지고 있다. 이래서는 휴식조차 할 수 없다.
가다보면 피할길 없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빛나는 풍경도 있고 비내리는 하늘도 있으며 구름걷히고 하늘 개는 날도 있는 법이다.
여행이 빛나는 것은 그런 메세지가 있기 때문 아닐까
한걸음 옮길때마다 한번 뒤돌아볼 때마다 바다 풍경은 변하고 있다.
내가 뭐랬냐...빛나는 풍경도 있고 비내리는 하늘도 있으며 구름걷히고 하늘 개는 날도 있는 법이라고 했지..
공식명칭은 웅동지구 연안 공원이다. 얼핏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71코스 종점은 고흥방조제 가는 길의 오른쪽에 있다.
어떤 것이든 만나고 보일 때 가치를 지니는 법이다. 오늘 밤은 웅동지구 공원이 아닌 고흥방조제 캠핑장에서 보낼 예정이다
해변캠핑장은 공식개장이 계속연기되어 현재까지도 무료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화장실과 넓은 주차장, 개수대 등이 완비되어 캠핑하기 부족함이 없다. 다만 샤워를 할 수 없으며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짙푸른 숲과 파란 하늘 가을 바람 따라 고흥만으로 들어온다
타는 저녁놀은 장엄하면서 온화하다.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저녁에 김광섭의 시를 떠올리며 71코스를 마무리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중에서
그 별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밝음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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