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조류독감(AI)발생으로 인한 노선이 폐쇄되어 2022.11.22부터 '23.3.31까지 남파랑길 61코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길은 때로 장애물이 가로 막기도 한다. 다리도 건너야 하고, 밀물의 바닷가를 돌아갈 때도 있으며 험한 산같은 갯바위를 타고 넘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걸었던 날은 아직 통제 전이니 행운이 따랐다고 할까 10월9일 비내리는 순천만을 걷는다
남파랑길 61코스는 순천 와온해변을 출발, 순천만이 내려다 보이는 용산전망대를 오르고 순천만 습지를 한바퀴 돌아 짱뚱어 폴딱 뛰어다니는 짱뚱어 마을과 화포해변을 지나 화포마을까지 이어지는 13.7km를 4시간 정도 걸어가는 코스이다
남도 삼백리길이 시작되는 길이기도 하고 느림의 여행을 통하여 나를 되돌아보는 길이기도 한 61코스를 따라가보자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 시간 09시에 와온해변을 출발한다.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파란 하늘에 양떼 구름같은 포근함이 내려않았는데 오늘 하늘빛은 흐리고 가는 비가 오락가락한다. 바람불고 춥기까지..
와온 행복마을을 지나 와온공원으로 향한다.
행복마을에 터잡고 살고 있는 얼룩강아지 한마리가 정자아래 비를 피한채 빤히 쳐다본다.
길과 섬과 하늘과 나무들이 회색빛 바다에 빠져 든다. 다시 비가 내린다
지금 지나고 있는 바다는 순천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갯벌해양생태지역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으로 뛰어난 생태계라고 하지만 내가 바라본 갯벌은 또 다른 생명에게 숨쉬는 터와 먹거리와 숨을 곳을 주는 생명의 보금자리로 인식한다
용산전망대 가는 길은 회색빛 바다와 황금들판, 가을비가 조화를 이뤄 환상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이 회색의 바다가 얼마나 단조롭고 삭막했을까.
"지상최고의 낙원"이라고 자칭하는 가야농원은 수백가지의 꽃들과 작은 제주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탓인지 정리된 느낌을 주지는 않지만 넓은 터와 순천만을 끼고 있는 자연조건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바닷가 염생식물인 칠면초는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자주색으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붉은 색으로 변화하는 칠면조 닮은 칠면초이다. 칠면조처럼 자주 색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칠면초라고 하는데 바닷가 또는 갯벌에서 무리를 이뤄 피어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갯벌길을 따라가는 길에 원두막을 만들어 놓았다. 바다에 떠 있는 칠면초와 손바닥만한 작은 섬이 운치를 더한다.
원두막 평상에 걸터 앉아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다리쉼을 한다. 비는 내리고 갯벌의 붉은 칠면초가 내어주는 이 편안함..
"한폭의 동양화"는 이런 풍경아닐까
순천만의 대표적 염생식물은 갈대와 칠면초이다. 그것만 있을까
갯벌위 데크길에 서면 작은 생명들이 구멍마다 가득하다. 이름을 다 불러주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넓은 습지에는 자연의 생명력이 함께 숨쉰다
순천만 습지를 하늘에서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자리에 용산전망대가 있다.
남파랑길 61코스는 와온해변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순천만습지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입장할 수 있지만 순천만 습지 입구에서 관람료를 지불하고 순천만 습지를 감상하는 게 원칙이다. 원칙을 지키면 61코스를 포기해야하는데 어쩌겠는가..
와온해변에서 데크계단을 오르고 얕은 야산을 약 10여분 오르면 용산전망대를 만난다.
탁트인 풍경이 사람을 압도하고 넓은 순천만 습지가 파노라마처럼 순천만 바다에 펼쳐진다
순천만 풍경은 계절마다 색을 바꾸며 변화한다. 때로는 안락과 풍요가 가득한 황금색으로 빛날때도 있으며 때로는 붉은 융단을 깐듯 붉게 물든 풍경을 편안하게 내어준다. 색이 변화하며 풍경을 만드는 셈이다
용산전망대를 내려서면 야자매트깔린 소나무 숲길을 지난다.
그 소나무 숲사이에 또 다른 전망대를 만들어 이색적 풍경을 만들어 내면 물길과 들판과 고향같은 그리움을 가득 안은채 순천만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순천만의 출렁다리를 건너고, 순천만 비상길의 포토존을 통과하면 길은 갈대숲 사이로 이어지는 데크길로 접어든다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순천만 습지와 갈대가 살아 숨쉬는 현장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이 마치 키낮은 숲을 걷는 것 처럼 편안해진다
신경림 시인은 "갈대"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갈대숲 사이길은 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하얀 갈대꽃이 바람에 흔들리다 그 사이로 드러나는 갯벌의 작은 생명체를 보여주기도 한다
길 중간 중간에는 초가지붕을 올리고 그늘을 만들었다. 비와 햇살을 피하고 피로해진 다리를 쉬는 쉼터역할도 한다
안내판을 두어 순천만에 살아가는 생명체를 알리기도 하고, 순천만에 빛을 더하는 시를 새겨 발길을 멈추게도 한다
갈대 손짓하는 순천만 습지에 들어선지 거의 1시간여 어느새 비는 그치고 무진교 다리위에 투영되는 갯가 흐르는 물이 바다로 이어지며 탁트인 순천만이 넓은 바다로 열린다
순천만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진교를 건너 갈대숲을 지나고 용산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길을 찾거나 생태탐방선을 타고 순천만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개인적 취향일지 모르지만 걸을 수 있는 힘이 있고 여유가 있다면 와온해변에서 무진교까지 걸어 볼 것을 권한다
순천만 습지이용은 유료로 운영한다. 어른 8,000원이며 생태탐방선은 7,000원이다
순천만 습지를 벗어나 길은 부드러운 흙길이 안내하는 낭만연인길로 이어진다
제방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둑길에는 왼쪽으로 순천만 갈대와 회색빛 바다를 오른쪽으로는 황금빛 들판과 탐조대, 산책로가 있어 호젖함을 더한다. 사람왕래도 그렇게 많지 않다. 감동을 줄만한 풍경은 없어도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있고, 길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도 있으니 천천히 음미하듯 걸어가보자
푸른 잔디와 황금들판과 무성한 대나무사이 오솔길, 순천만 갈대와 멀리 고흥의 산봉우리들..낭만연인길은 이런 길이다.
남도삼백리길 비탈하나 없는 평평한 길을 30분이상 바람은 바람대로 나는 나대로 걸어간 흔적을 조금씩 남겨둔다
승마하는 사람들이 언덕에 말발자욱을 남기며 뛰어 다닌다. 조금 위협적이지만 사소한 것들때문에 기분을 망치기는 싫다
갈대로 지붕을 얹은 정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몸을 데운다. 조금 춥다. 바람탓이다
말타는 사람들..또 만났다. 비에 젖은 땅위로 말발자욱이 선명하다. 도처에 흔적을 남긴다. 말똥...
화포마을까지 5km, 순천만 갈대길은 계속이어지고 있다
남파랑길 61코스 안내판이 서있는 곳에서 역방향으로 걷고 있는 도보꾼을 만났다. 여수구간만 걸으면 다 걷는다고 한다
그가 걸었던 이야기를 제방에 선채로 모두 들었다. 3년째 걷고 있다는 그의 여행기..세상에는 참 대단한 사람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멈추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고 여기까지 걸어온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나는 아직 1달 남았다
순천만 갈대숲을 지나고 짱뚱어 마을로 접어든다. 식당마다 차들이 빼곡하다.
짱뚱어마을에 해마다 10월이면 순천 별량면 장산마을에서 팜파티가 열린다고 한다
팜파티는 농장(Farm)+파티(Party)의 합성어로 농장이나 마을로 소비자를 초대하여 마을 및 특산물, 체험행사등을 함께하는 파티를 뜻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 수산물로 차려진 점심식사와 함께 징거미새우낚시, 함초체험, 칠게요리 체험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가족단위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직접 그 안에 들어가서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싸움을 할 때는 입을 크게 벌리고 폴짝거리며 뛰어 다니다, 작은 발자욱소리에도 갯벌구멍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진다.
짱뚱어는 좀 특별하게 생겼다. 눈은 머리위로 톡 튀어나와 있으며 지느러미와 몸에 에메랄드빛 무늬가 있다.
평소에는 갯벌위를 천천히 기어다니며 햇살을 쪼이기도 하고, 갯벌속의 작은 먹이를 찾아 헤메기도 한다
위 그림은 득량만에서 촬영한 짱뚱어이다
전골이나 회 또는 튀김이나 짱뚱어탕으로 유명하지만 별 맛은 없다(개인적 취향). 2022.10월 기준 13,000원
짱뚱어마을을 지나고 별량화포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길은 찻길이든, 마을길이든 어디든 모두 갯벌을 안고 있다.
우명마을을 지나면 갯벌건너 마을길과 찻길로 길이 이어진다. 작은 생명들이 숨쉬고 있는 갯벌을 지나면 회색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바다와 다릿돌이 나온다.
길은 어느새 화포마을로 접어들었다. 61코스의 종점이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깊은 곳으로 길이 사라져 버리지 않은 이상 길은 길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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