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47코스는 지금 걸었던 길과 다른 길이다.
오륙도에서 남해섬까지 46개코스가 주로 해변 또는 해안풍경을 조망하기 위한 산길을 걸었다면 오늘 걸어가는 코스는 하동의 내륙을 걸어가는 코스이다.
걷는 내내 금오산이 뒤따라 오던가, 앞서 가든가 잠시 숨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를 몇번씩 숨바꼭질을 한다
하동포구의 너른 벌판과 넉넉한 섬진강을 바라보며 걸어가면 갈대숲이 바람 타고 가까이 오더니 이내 대나무숲으로 자리를 바꾸는 사이 어느새 하동의 백사청송 송림숲을 만난다. 하동코스 27.6km 가장 긴 거리지만 지겨울 틈이 없다.
노량대교라는 다리이름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원래 제2 남해대교로 결정되었으나 남해군과 하동군이 다리이름을 놓고 서로 다투다 최종적으로 "노량대교"로 합의한 명칭이니 산통 후의 탄생이 주는 기쁨 정도로 받아 들여야 겠지
1973년 준공된 남해대교는 40년이 흐른 최근 새로운 다리의 출현을 기다리게 되었고 노량대교가 탄생하였다
남해의 수려한 풍경이 푸른 노량바다와 어울려 인간이 만든 건축물도 절경이 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노량대교 주탑은 경사지게 지어졌다고 한다 한산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진법 "학익진"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미적 감각이 없어서일까.....잘 모르겠다
지난 4월 거제 망치몽돌에서 탑포까지 함께 했던 동생과 다시 합류하여 1박 2일간 동행한다. 5.28.
차량1대는 송림공원에 1대는 남해대교교차로 부근 노량주차장에 주차후 노량대교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며 길을 떠난다. 47코스의 시작은 바다로 부터 시작된다 09;30
노량대교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강태공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금지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텐트를 치고 아침부터 고기를 굽고, 소주병이 돌아다니는 노량해변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건 변하지 않는 법..시원한 하늘과 푸른 바다와 그 곁에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숲..
노량대교를 지나 금남항으로 들어간다.
5월말 다소 무더운 날씨 탓인지 항구에는 사람그림자 조차 없지만 큰 목섬, 작은 목섬, 개구리섬과 소왜도 수많은 섬과 섬을 잇는 푸른 바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풍경이 어디 있으랴
오늘 5.28 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시행되는 두번째 날 금남면 체육공원 목욕탕은 사전투표소가 되었나 보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보이는 이 하나 문앞에서 사람을 기다린다. 동생이 화장실 이용하는 동안 지켜봤지만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다. 이거...투표율 제대로 나올까.. 나..? 남파랑길 떠나기 전에 사전투표를 마쳤다
묵밭을 지나가며 최근 개정된 강화된 "농지법' 관련,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의견이 서로 다르다. 시대에 맞지 않고 농업생산력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아니다 농지투기를 불러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ㅎㅎ 전문가도 아니면서..풀밭이 되어버린 휴경지를 바라보며 언덕을 오른다.
금남체육공원을 지나고 미법마을쉼터를 지나 언덕을 오른다. 발아래 노량바다가 펼쳐지는 풍경좋은 곳, 그 언덕배기에 칡덩굴 아래 산딸기가 몰래 피어나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이런 건 그냥두고 갈 수 없지..동생이 한웅큼 따서 내게 건네 주길래 냉큼 받아 입으로 가져간다. 새콤하지만 맛있다.
금오산을 마주보며 논길을 걸어간다. 내륙으로 깊숙하게 바다가 들어왔다.
바다와 논과 밭사이 경계를 따라 이어진 농로를 지나고 감나무밭을 지나간다.
꾸불꾸불 내려서고 휘돌아 논밭을 감싸는 길은 사등마을까지 이어진다
요즘 보기 어렵다. 경지정리와 농수로가 정비되면서 시골 정취를 물씬 풍겨주던 둠벙은 대부분 사라졌다
우리곁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둠벙뿐일까만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뽕나무 가지마다 잘익은 오디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려있는데 자세히 보니 흰 거미줄이 오디를 감싸고 있다.
병든 오디는 먹을 수 없다. 동생이 아쉬웠는지 깨끗한 오디를 골라 따서 내게 건네준다.
토종 뽕나무 오디는 익어가면서 검은 빛을 띈 보라빛으로 변한다.
한웅큼따서 입안에 털어넣고 맛을 음미하다보면 금새 손과 입이 오디빛으로 물들어간다
물이 가득한 논에 이앙기로 모심기를 하고 있다.
혼자 모판을 올리고, 이앙기를 운전하고 비료를 뿌리고 1인 3역의 슈퍼맨 농부에게 박수를...
사등마을 회관앞 정자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바나나에 계란, 동생이 가져온 참외 한개씩..그리고 커피 한잔
햇살이 부담스러워지는 낮으로 가는 시간, 기온이 점차 오르고 있어서인지 아무도 없다
물이 가득차 있는 걸 보니 모심기할 준비를 모두 마쳤나 보다.
가끔 백로와 왜가리가 날아왔다 가기를 몇번, 아침부터 따라오던 금오산이 대송마을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니 논물위로 그림자되어 비친다
대송마을을 지나 마을 뒤쪽으로 연결된 언덕배기를 오른다.
골목길에 우물, 우물 뒤로 표고버섯 참나무, 대송리 야산에서 바라보는 대섬과 넓은섬 그리고 조각섬이 점점이 흩어지듯 떠있다
긴 겨울을 보내고 해마다 5월이 오면 노랗고 흰 꽃을 매달고 향기를 사방으로 날려보내는 인동은 말그대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꽃잎 하나 꺽어 향기를 맡아보면 왜 그런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인동(忍冬)은 또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큰 성취를 이뤄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별칭이기도 하다
대송마을에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임도를 지나는데 소박한 펜션이 숲을 비집고 자리잡은게 보인다.
풍경도 없고, 바다조차 보이지 않는 펜션에 누가 묵을까 싶지만 마당 한켠에 카누 10여척이 누워있는 걸 보니 여름이면 카누체험을 하는가 보다 짐작할 뿐
못자락에 벼가 자라고 옥수수가 무럭무럭 키를 키우고 있는 진정마을을 지나간다.
아내는 허리숙여 모판을 나르고 남편은 이앙기에 앉아 모를 심는다.
한날 한시에 모든것이 다 되지는 않는다.
농사는 때가 다 있는 법, 계절따라 농사를 짓고 가꾸고 열매를 맺으면 수확을 한다.
진정천을 따라 갈대 피어나는 수로를 지나고 선소공원을 향하여 길을 잡는다.
갈대와 바다로 흘러가는 냇물과 쭉 뻗어 있는 제방길 그 어울림이 좋다. 하늘이 좋다. 풍경이 좋다
선소가는 길 남파랑길에 세워진 벤치에 앉아 섬진강 하류의 강물을 내려다 본다.
섬진강은 이곳에서 기지개 켜고 잠시 길을 멈추는 사이 기운을 차려 다시 물길을 재촉하는데 섬진강이 실감나는 장면을 곧 만나게 된다. 무엇일까.
섬진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재첩을 잡고 갯벌에서 작은 생명들을 건져내어 바구니에 담는다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도 함께 공존할 수는 있다.
섬진강 샛강위로 오후의 햇살이 퍼져 나간다.
객길이 아니고 길객인가..
객길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차가 다니지 않은 찻길이지만 개망초가 하얗게 무리지어 꽃을 피우고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걸을만한 길이다.
조개섬을 바라보며 고전면으로 접어든다. 물빠진 갯벌에 작은 어선 한척 저만치 보인다.
남파랑길 아래 섬진강 피크닉 파크골프장이 길을 따라 길게 뻗어 있다.
어르신 몇분이 골프를 치고 있다. 언제든 찾아와 골프를 취미삼아 웃고, 떠드는 소통의 장이자 공감의 장으로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스포츠이다.
하동포구 다리를 건너 선소마을 앞 잘 정리된 공원같은 섬진강을 따라가며 오늘 저녁 하룻밤 묶을 차박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섬진강이 아니면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풍경에 반해 전부 잊어버리고 오직 강물만 쳐다본다
노량을 떠나온 지 6시간, 간단하게 준비한 간식이 유일한 먹거리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보다.
재첩거리 도착시각 오후 4시, 강변 원할매재첩회식당으로 들어가 재첩국을시킨다.
부추(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고 부른다) 동동 떠있는 뽀얀 국물의 재첩국은 감칠맛이 난다.
도시에서 먹던 맛과는 천지차이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진짜 맛있다.
조선족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 모지라면 국 더드릴테니 말씀하세요" 한다.
한그릇을 추가하여 동생과 똑같이(?) 나눠 그릇을 싹 비웠다.
재첩거리를 지나 고가다리 아래를 넘어 밤꽃 활짝 피어난 좁은 길을 지난다.
아까시아꽃 향기가 코끝을 맴돌더니 어느새 밤꽃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조선의 한 선비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눈송이 같은 밤꽃 향기 물씬 물씬 풍기더니
주렁 주렁 달린 밤송이 하늘의 별과 같아라."
예로부터 밤꽃은 "남성의 향기"로 알려져 왔다.
그런 시도 있다 "비릿한 정액냄새......."
밤꽃 피는 계절이 돌아 왔다
빨간지붕 식당은 상호가 "재첩식당"이다.
하동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젊은 시절 재첩식당에 들러 재첩국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옛주인은 없고 아주머니 한분이 아는척을 한다. "안녕하세요..식당은 하나요" "오늘은 안된다"는 답이 돌아온다
갯벌과 농게와 갈대를 만날 수 있게 갈대밭 사이 신월습지에 데크길을 내었다. 꼬불꼬불 이어진 길은 약 100m..
훔쳐보듯 숨어있는 섬진강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차도 옆으로 만들어진 신월습지 데크길을 걸어간다.
발아래 지리산 정기 잔뜩 서려있는 섬진강 푸른물과 초록의 갈대를 만나고 진한 갯내음 향기를 맡는다
뽈뽈 기어다니는 참게와 향기로운 은어와 재첩이 살아 숨쉬는 지리산의 강 섬진강을 따라간다
데크길을 내려서지 못하고 길위에서 죽림산책로로 이름붙여진 섬진강대나무숲길을 내려다 본다.
불어가는 바람에 서걱거리는 댓잎들이 나부끼기라도 하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한꺼번에 소멸한다
하늘을 향해 시원스럽게 뻗어 있는 대나무의 물결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해파랑길 울산태화강대숲에서 맛보았던 청량감 넘치는 음이온과 시원한 바람이 만든 기운을 맘껏 누려본다
횡천강 다리를 건너 하동포구공원으로 들어간다. 공원에는 광장과 전망대와 소나무숲과 섬진강이 있다
공원사이로 난 길을 따라 동생이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길은 모두 평지길, 약간 덥다는 느낌은 늦은 오후가 되면서 쬐끔 기온이 낮아졌다고 해야하나.. 암튼 여기는 따뜻한 남쪽이고 녹차향 익어가는 하동이다
초록잔디깔린 하동포구 공원을 들어서자 마자 도도히 흘러가는 섬진강 푸른 물결을 맨처음 만난다.
전망대가 아니어도 사방이 탁트여 고개를 들면 저기는 주황빛 섬진강대교, 저기는 광양, 저기는 형제봉 그리고 섬진강....섬진강이 흐르고 산과 골과 강물들이 섬진강으로 빠져 든다
오후 5시 40분, 5월의 긴 해가 광양 어디쯤 산으로 기울고 있다.
강물은 햇살로 반짝이고 숱한 세월이 서려있는 섬진강은 말없이 흐른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섬진강에 숲이 빠지고 산이 빠지고 햇살이 빠져들고 있다
섬진강은 두꺼비에서 유래하였다. 섬은 두꺼비 섬(蟾)자이다.
하저구마을 작은 포구를 지나가는데 섬진강 물아래 고향포구가 새겨진 벽이 보인다
강너머는 광양, 섬진강을 상징하는 금두꺼비 형상이 하저구 마을 한복판에 폼나게 서있다
수려한 경관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섬진강은 구비구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지리산 골골과 섬진강 물줄기 하얀 백사장, 붉은 소나무 가득한 섬진강 청송백사 아름다운 풍경속으로 들어간다
해인사에 소리길이 있다면 하동에는 백사청송길이 있다. 하동포구에서 하동송림숲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섬진강을 따라가다보면 푸른 강물과 넓고 흰 백사장, 짙푸른 송림숲이 반짝반짝 빛난다.
하얀모래와 푸른 소나무, 파란 강물..섬진강만큼 잘 어울리는 풍경이 또 있을까
오늘 하동포구 80리를 모두 걸었다. 백사청송 송림숲 도착시각 오후 6시. 9시간의 여정을 모두 마친다
오늘 밤은 아름다운 섬진강변에 자리를 잡고 동생과 긴여정의 끝에서 만나는 막걸리타임을 가졌다.
강변에는 이미 어둠이 내렸지만 하늘은 아직 훤하다. 아름다운 밤..
늦은 저녁을 먹고 하늘의 별을 바라 보고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의 소리를 들었다.
오늘 밤 하늘에서 별과 은하수가 소리없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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