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2코스는 양양 인구해변을 출발하여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38선과 하조대해변으로 이어지는 9.9km의 비교적 짧은 코스이다.
살다가 가끔 가슴이 아릴 정도로 사람이 그립거나 세상살이가 팍팍하여 힘이 들때면 하조대로 가서 바위에 부딫히는 파도를 보고 오라고 말하고 싶다. 가지 못하면 해저문 하늘이라도 쳐다보라고..그러면 별이라도 볼 수 있겠지
해파랑길 42코스는 죽도정 인구해변에서 시작한다. 여기는 양양이다
인구해변이 새벽 여명에 눈을 뜨고 있다
어제밤 지경리공원에서의 추위와 늦은 저녁, 불편한 잠자리에도 불구하고 막걸리 한잔에 새벽까지 녹아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찾은 인구해변, 아침바람이 차다
고기잡이 배들이 점점이 떠있는 인구바다에 아침 햇살이 맑게 빛나고 있다
해변너머로 죽도정이 보인다. 지금은 우리땅, 한국전쟁 이전까지 이곳은 38선 이북이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동산항은 동해를 가장 많이 닮은 작은 어항 중 하나이다
동산항에는 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항구에 바위와 청자빛 바다가 뭐라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다는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고 사람보다 늦게 잠이 든다.
염생식물 가득한 둔덕 모래밭이 낮게 엎드려 사람의 발자욱 소리를 듣는다. 북분바다는 조용하다.
양양의 슬로건 "고맙다!"에 모든 것을 선뜻 내어준 양양에 내가 먼저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해가 높아지니 몸이 따뜻해진다
바람이 시원하다. 느낌이 좋다. 오늘 하루길은 평안할 것..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둥근기둥처럼 보이는 1층에 계단이 숨어 있다.
2층 창가에 서면 짙푸른 동해바다가 보일 듯하다
대나무와 소나무숲이 주는 여유와 휴식같은 바람을 맞으며 아침 길을 간다
언덕위에서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넓은 차도 건너 잔교리 해변이 보일듯 하고 38선 죽도가 어렴풋이 보인다
양양의 슬로건은 다양하다. 서핑을 하면 "참된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마음이 행복하면 행복의 문이 열린다"고 한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파도가 양양을 서핑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수도권 젊은이들이 서핑을 하기위해 먼길 마다않고 몰려들고 있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 서핑이라는 스포츠에 전율을 느낀다"
민족분단의 아픔과 비극을 함께 가져온 38선. 70여년 전 열강에 의해 만들어진 분단선에서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그 미래가 없다"는 말을 되새겨야 할 것.
바다와 땅은 서로 갈라졌지만 38선 바다 "죽도"는 언제나 그자리에 그대로 있다
죽도가 바라보이는 38선 휴게소 창가에 앉아 짜장면 한그릇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굶지말고 걷자
기사문해변에 눈에 익숙한 벤치가 놓여있다. 자연은 늘 그대로이지만 사람이 지나가면 자연은 순수를 잃는다.
기사문해변으로 흘러가는 잿빛 시냇물을 보며, 여기는 강원도 양양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항 작은 마을에 벽화거리가 생겼다. 방파제와 골목길, 담장에 그려진 벽화
현북면 양양장에서 시작된 기미 만세운동을 벽화로 재현하였다
도보여행객에게 버스시간표는 소중한 정보가 될 수 있지만 맹신은 금물, 때로는 택시가 정답이 될 때도 있다
자연은 언제나 변함없다. 꽃이 필 시기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하조대 가는 길 백사장에 회색 물감을 덧칠하여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내었다
어떤 바위라도 자기 색깔을 가진다. 바다가 파란색만 있는 것이 아닌 것 처럼, 바위 또한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색으로 존재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우뚝 솟아 소나무한그루 머리에 이고 사는 큰 바위 하나
고려말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 숨어 살며 새로운 세상을 위한 역성혁명을 꾀했다고 하는데 훗날 조선건국으로 이어졌으며 두사람의 성(姓)을 따라 하조대라 했다
뛰어난 풍경과 기암으로 인해 바위에 하조대라는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고려말 신흥사대부였던 하륜은 풍경좋은 이곳에서 역성혁명을 꿈꾸었다고 하지만, 그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는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사회 조선 500년, 힘들고 고달프지 않았던 시대는 단 한번도 없었으니 허황된 꿈이라도 꾸었던 것일까
먼나라로 가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늠름한 소나무와 비탈진 곳 기암괴석, 바다위로 솟은 수많은 진경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길을 따라 하조대까지 왔다. 내가 걸어 온 길. 선물이라고 다 같은 선물이 아니다.
호위하듯 무리를 이뤄 곧게 서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색과 모양을 달리하는 하조대 바위위 소나무는 수령이 200년이란다
하조대 해안 절벽에 우뚝 솟아 있는 무인 등대가 바다를 내려다 보며 서있다
한달여 동안의 여행은 다수의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도 포함된다.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은 비슷하다.
"어디서 왔느냐", 부산에서 걸어왔다는 대답에 "뭘하는 사람이냐..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느냐.." 질문 한바탕하고 나서는 그다음 자기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하조대 정자가는 길을 버리고 돌아나오는 길에 허리구부리고 밭에서 일하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깨어있는 동안 잠시도 쉴틈이 없을 것 같은 할머니의 텃밭.
할머니의 할머니가 그랬고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할머니, 수고많으십니다" 인사에 허리를 접은채 "예"한다
하조대해변 삼거리 전망대 가는 길가 횟집 아저씨는 빨래줄에 빨래말리듯 자연산 미역을 걸어놓았다
2019년에 강원도 동해안에 큰 피해를 입혔던 태풍 미탁으로 인하여 하조대 해변 데크길을 폐쇄한다는 안내문.
동해안 다수의 해안지역이 부서지고 훼손되어 공사중이지만 확인 결과 2021년 5월에 보수완료되었다고 한다
햇살이 자취를 감추더니 갑자기 바람불고 비까지 내린다. 우의를 꺼내 입으며 데크를 내려서는데 몸이 추워진다
날씨탓을 해보는데 금새 하늘이 개이더니 다시 햇살이 고개를 내민다
바람이 불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멈추면 다시 비가 그치기를 되풀이 하고 있다
멋들어진 하늘과 바다가 조용하게 부딫혀 하얀 파도를 만들어 낸다
바닷가에 흔들리며 흘러가는 작은 시내물, 여기는 양양 하조대이다
이렇게 넓은 해변에 오직 나혼자 뿐....
이따금 들려오는 건 바람소리, 파도소리 뿐, 다시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나를 위로해줄 커피한잔이 필요해.
비구름을 뚫고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햇살을 받으며 커피한잔을 마신다.
바람 불어 비가 내려도 따뜻한 커피가 내몸을 깨우고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해파랑길 42코스는 하조대에서 끝이 나지만 오늘 가야할 최종목적지는 아마도 낙산해변일 것이다.
31일차. 몸과 마음이 조금씩 지쳐간다.
어떤 인연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했을까를 생각한다. 피천득의 인연을 읽다보면 사는 일이 모두 인연인것 같다.
어떤 힘에 이끌리듯 인연에 의한 만남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내재되어 있던 필연이며, 약속일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 때로 달콤한 생각에 발을 헛딛기도 하지만 금새 새로운 풍경에 빠져 들고 또 길을 간다.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길이 조금씩 그 끝을 보이고 있다
★ 해파랑길 42코스 정보
- 하조대 등대는 군사지역으로 오후 늦은 시간대는 출입이 금지되므로 사전 확인(하계 오후 8시, 동계 5시)
- 인구해변부터 하조대까지 편의점과 화장실이 다수 있어 편리하게 이용가능
- 하조대 해변 화장실 완비되어 차박가능하나 사전 확인 필요(대부분 해변 텐트 또는 카라반 출입을 금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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